<당신의 시간 속에서> 리뷰
비일상적인 상황은 언제나 눈길을 끄는 것 같습니다. <무너지는 어느 일요일 오후>가 무너진 빌딩 잔해 아래의 남녀 이야기였다면 <당신의 시간 속에서>는 시간이 멈춰버린 아이스크림 가게 속의 남여 이야기입니다. <무너지는…> 처럼 웃기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재미있게 잘 읽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같은 시간을 반복하거나 하는 시간이동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타임패러독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당신의 시간 속에서>도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말을 열어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차라리 열어둔 것이 나았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사실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1시간 뒤의 결말보다는 그 1시간 동안의 내용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윤호준은 ‘저번’ 윤호준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이 딸기 딸기 스트로베리를 주문하고, 똑같이 의아해 하다가, 똑같이 양수정의 부탁을 수락하고, 똑같이 결말의 순간을 궁금해 하며 나갑니다. 양수정의 입장에서 ‘이번’ 윤호준은 수많은 윤호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아무런 개성도, 차이점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연히 양수정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양수정의 입장에서, <당신의 시간 속에서> 본문에서 흘러간 1시간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한 일상의 한 단락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 주인공은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다른 인물과 차별화되는 점, 그 인물이 아니면 안되는 면모가 있기에 이야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번’ 윤호준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는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수정의 반복되는 일상을 서술하는 서술자의 역할은 충실히 해주고 있지만, 수천번 반복된 다른 윤호준들과 차별화 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바닐라 망고나 초콜릿 무스를 주문하는 윤호준이, 그래서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에 작은 일탈을 일으키는 윤호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리뷰를 쓴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분량이 서너배 더 많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새 없이 즐겁게 읽은 것은 분명 작가님의 능력 덕분이겠지요.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