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에 호러가 당당히 첫 번째로 적힌 작품을 읽으시는 분이라면, 모두 취한 채로도 2km 이상 자전거를 쫓아온 운전자의 협박이 단순히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작품에서 ‘에이, 설마’는 그 어떤 치명적인 무기보다 많은 희생자를 냈고 또 낼 예정이니까요. 그러니 현명한 주인공이 아주 안전하고 또 자신 있는 우회로를 선택했을 때, 저는 참으로 안일하게도 이화령 옛길은 제목의 이화령이 아니라고 여기고 말았습니다… 그랬으면 장르가 호러일 리도 없는데 말이죠!
최근에 배운 말 중에 ‘피장봉호’가 있는데, 복습 차 써 보자면 노루를 피하다가 호랑이를 만난다는 뜻입니다. 술 취한 사람도 해지기 전부터 드나드는 3번 국도의 터널이 과연 노루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이화령의 별이 주인공의 호랑이인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면 이 시간에 이 길을 안 다닌다는 묘사를 보기야 했지만, 그래도 피 빠는 걸 눈치채기 전까지는 꽤 가슴 따듯한(이 부분이 BL인가요?) 동행처럼 느껴졌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마저도 한국인이 호랑이에게 갖는 일방적이고 추상적인 친밀감과 유사하다고 농담으로 생각했는데 좀 더 생각해 보니 호랑이와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좀 친근하게 여기지 않나도 싶습니다. 물론 마스코트 캐릭터에게 갖는 감정의 연장선이겠지만요.
그런데 딱 한 번 나와서 까맣게 잊고 있던 주인공 닉네임이… 이천 로드 별따기네요?? 1위인 것도 눈엣가신데 닉네임까지 이러니 끌릴 수밖에 없겠다 싶지만, 그래도 자전거로 언덕길 내려가면서 앞서가는 사람을 쇠구슬로 맞추는 노력으로 과거의 자신을 앞지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고 장르와 맞지 않는 안타까움도 좀 가졌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는 언덕길을 오르면서도 콧노래를 불렀는데, 그 멋진 신체 능력이 아까워서요.
하지만 자전거 좀 타러 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하게 생긴 주인공에게는 그냥 미친놈일 뿐이겠죠! 그래도 1위 한 가락인지 냅다 도망가는 순발력에 안도했는데, 이화령의 별이 정말 부지런히 바쁘게 산 미친놈이었어서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시험 기간에 더 열심히 게임하던 제 모습도 저렇게 보였을까요? 그럴 시간에 페달을 더 밟으라고 야단치고 싶어지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아연실색하는 동안, 주인공은 고작 17초가 내리막길에선 몇백 미터나 벌릴 수 있다는 걸 계산하고 어깨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한 단씩 기어를 올려가며 눈앞이 깜깜해지도록 속도를 더 내는데 와… 저는 힘들게 자전거를 타 본 경험도 없는데 심장도 허벅지도 터질 것 같은 중력의 무거움과 점점 뒤처지는 이화령의 별, 과거에 세운 기록을 넘어섰다는 짜릿함이 정말 멋졌습니다. 사람은 운동하는 걸 보기만 해도 한 5%쯤 운동 효과가 있다는 말을 봤는데 이 작품을 보는 것도 해당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이 뜨거운 승리의 바로 다음에 오로지 이화령의 별 자신의 물리력만 가지고 죽이는 장면도 이 작품을 호러 장르로 만드는 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 다시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면서 떠나는 뒷모습까지 모든 게 너무나도 깔끔해서 스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