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안데르센 동화였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닌 주인공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결말이 충격이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을 파괴한 이 동화는 그래서인지 디즈니 버전의 인어 공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인어 공주 동화나 인어에 관한 전설 때문에 바다에는 인어가 살고 있을 거라는 꿈을 꾸던 아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아이 중의 하나였다. 바닷가에 있는 인어 공주 동상을 보면서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저기 정말 인어가 사냐고.
어른들은 웃거나 진지한 얼굴로 말해주었다.
그런 건 없어. 인어는 존재하지 않아.
동화는 진짜가 아니야.
그 말을 듣고 겉으론 믿는 척했지만 믿지 않았다. 어른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거지. 네스호의 괴물처럼 인어는 살아있고 우리가 못 발견한 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던 심정이었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면 저 별들 중에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고, 바다에는 인어들이 살고 있을 것이고, 심청전이나 별주부전에 나오던 용왕님이라는 사람은 사실 인어 왕이 아닌가? 단순히 상상으로만 만들어 낸 동화가 아니라 인어 전설들을 바탕으로 썼다는 걸 보면 뭔가 근거가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하던 어린이는 소설가가 되었다. 환상이 많이 깨졌지만 아직도 나는 현실에서 말도 안 된다 말하는 환상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비티 작가님의 <인어학 개론> 첫인상은 백과사전 같다였다. 더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이거 위험한 소설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왜 위험한가 하면, 나 같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미묘한 사람이 읽으면 기분이 상당히 묘해진다.
<인어학 개론>은 도입부부터 작가님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작품을 보기 전, 소개 글을 꼭 먼저 읽고 <인어학 개론>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표지는 없지만 표지를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백과사전 같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독자가 상상할수록 풍부해진다. 문장 하나하나가 압축 파일을 풀면 살아 움직이는 영상이 펼쳐지듯 느껴지는 것이 흥미롭다.
어릴 적에 이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쉽다. 인어는 어딘가에 있다고 어렴풋한 기대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인어학 개론>은 그들의 기원이 어디서부터이며,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라고 세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인어가 현실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해 왔으며,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우리의 이웃으로서.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나 작가가 인어의 후손이거나 인어를 지인으로 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계속해서 인어를 탐구할 수 있으며, 인어와 소통할 수 있다는 멋진 메시지를 주고 있다. 텍스트를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판타지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비티 작가님이 소설가가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보험 설계사가 되었다면 설득력으로 보험 판매왕이 되었을 것이며,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면 많은 신도를 거느린 사이비 교주가 되었을 것이고, 음모론자가 되었다면 전 세계를 위협할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두 다리 대신 지느러미가 달린 삶을 동경하던 이들이 어느덧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땅 박차기 보다는 바다를 헤엄치고 싶을 것이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야기의 첫 시작이 의미심장하다. 모르고 살아왔지만 우리는 사실 인어와 함께 살아오고 있었던 거야라고 작가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