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거창하니, 본인을 ‘독자’라 칭하겠다. 결론부터 말해 독자는 공포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본 텍스트에서는 독자가 공포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를 회고해보고자 한다.
사람은 저마다 인지능력이 다르다. 취향이 다르다. 같은 텍스트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건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니’라는 말로 면피성 친절을 보여드리고 싶진 않다. 작가께서는 말미에 피드백과 응원을 부탁하셨으니, 이 코멘트가 작가의 더욱 멋진 작품의 밑거름이 되는 응원이길 바라며, 시작하겠다.
작품의 분량이 짧은 관계로 내러티브는 약식으로 소개하겠다.
‘형이 외지에 다녀온 그날 밤, 광기를 품은 기괴한 열병이 돌아 온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짧은 분량. 장편 소설이라면 밀도 높은 에피소드 한 화. 제한된 지면 내에서 작가는 공포를 그려내기로 결심했다. 이 작품은 단 하룻밤을 다룬다. 독자는 형이 돌아온 첫날밤에 초대받았다.
아쉽게도 독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다. 뭐야? 어떻게? 응? 하는 사이에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엄마는 원숭이가 되었다. 주인공의 옆에는 줄무늬 뱀이 기어가고 있었다. 그 이유를 고민하다가 세 가지 포인트로 좁혀봤다.
첫째로, 서술의 의도와 독자의 심리가 동기화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본 작품은 서사의 긴박감에 따른 문장의 호흡 변화가 훌륭했다. 일상적인 사건의 전개에서는 만연체를, 긴장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스타카토를 채용했다. 다만 만연체 부분에서 쉼표가 과도하지 않았을지의 의견을 드려보고 싶다. 때론 문장 자체의 주술관계가 모호하여 비문이 되기도 했다. 비문을 읽은 독자는 문장의 시작 지점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원주민들은 형에게 잘곳과, 음식을 배불리 먹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몸짓으로 소통하며 사진 찍는 것도 도와주었다.’
‘피곤했는지, 무언가를 숨기는 건지, 알수없는 형의 급 마무리에 우리는 쏟아지는 궁금증을 뱉어보려 했지만, 이내 오늘 집에 돌아와 힘들 것을 걱정하는 엄마의 따듯한 마음에 동감하며 입을 멈췄다.’
심리적인 압박이 공포를 자아낸다. 그러기 위해 독자는 행간에서 인물과 심리, 사건에 몰입해야 한다. 다만 호흡이 너무 길어지거나 비문이 된 문장을 해독하기 위해 독자가 주어와 술어를 직접 끼워맞추다보면, 텍스트가 쌓아 올리던 긴장감은 무너지고 독자는 공포로부터 멀어진다.
둘째로, 극한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지적 서술의 괴리감이 그러했다. 이것이 독자가 공포를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느꼈다. 화자는 고열에 시달리며 뇌가 익어가는 듯한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 가족이 죽어 나가고 눈앞에 원숭이가 보이는 아비규환, 지성이고 뭐고 내던지고 냉장고로 달려드는 처절한 순간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아파본 적이 있다. 몸살이나 고열에 시달리면 고통과 혼란에 내동댕이쳐지는 그 느낌을 안다. 그러나 화자의 고통은 그조차도 아득히 넘어설 것이다. 에어컨의 바람이 열풍으로 느껴질 정도로, 한 줌의 냉기를 얻고자 냉장고에 들어가야겠다는 비이성적인 판단에 내몰린 상태다.
‘처음엔 분명 엄마를 원숭이에게서 구해내려 한 것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목적은 어디론가 증발한듯, 어느 순간 내 몸은 원숭이는 안중에도 없이 냉장고 앞에 바짝 붙어있다.’
‘끽끽- 비웃음 같은 울음소리에 옆을 보니, 원숭이가 옆에서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내가 원숭이를 말리곤, 웃기게도 정중하게 냉장고 문을 두드리며 차례대로 번갈아가며 바람을 쐬자고 말한다.’
‘나와 원숭이의 힘을 이겨내기엔, 우리의 부푼 뇌에서 근육에게 보내는 신호를 이겨내기엔, 냉장고 속 무언가의 뇌는 이미 한기에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서 일인칭 서술은 극히 냉정해졌다. ‘목적의 증발’, ‘웃기게도 정중하게’, ‘뇌에서 근육에게 보내는 신호’ 등,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은 상황의 긴장감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이 시점에서 독자는 화자의 고통과 혼란이 아닌, 화자가 자신의 상황을 타자화하여 설명해주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셋째로, 6번 파트의 테마인 ‘미스터리의 진실’을 규명하는 부분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망망대해의 열이 가득한 그 섬에서… 야만인들과 원숭이들이 모여 그 끔찍하고 더러운 손으로 나무를 엮고 닭의 피를 뿌려 온갖 열병을 담아낸 후, 그것을 막으려던 용맹한 형을 죽여 그 가죽을 쓰곤 형 행세를 했으리라. 그 야만인이… 선물로 위장한 그것으로 우리 식구에게 저주를 건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형이 가져온 공예품이라는 맥거핀이 미스터리의 열쇠로 발사된 ‘체호프의 총’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화자가 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미스터리 호러의 공포는 대개 ‘알 수 없는 것’에서 온다. 혹은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 진실이 독자가 미처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복선들과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을 동반한 공포가 완성된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의아함을 느껴 놓친 내용이 있는지 다시 읽어봤다. 소설 전체에 ‘닭’이라는 단어는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다. 이전까지 제시된 단서를 통한 합리적인 추론 범위는 ‘눈앞의 인물이 형이 아니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전반적으로 말하지 않고 보여줘서 읽기 편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서사의 진행 속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좋았다. 평범한 아파트 거실이 열대의 정글로 오버랩되는 연출도 매끄럽고, 사이키델릭을 탁월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아파트 거실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서사를 끄는 분위기의 냄새가 열대의 이름 모를 섬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원주민과 열병, 그리고 광기. 옛 게임 ‘파크라이 3’의 메인 빌런 ‘바스 몬테네그로’가 떠오르기도 하고, ‘더 포레스트’가 생각나기도 했다.
부분적인 비문과 잦은 쉼표에서 조금 밀리는 감은 있었지만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좋았고, 열병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공포라는 인간 근원의 감정을 다루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작가께서 또 다른 공포 단편을 써주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