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발할라에 가고 싶은가? 이제 무척이나 가고 싶어질 것이다 감상

대상작품: 웨이브: 발할라를 위하여 (작가: 잠곤,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일 전, 조회 15

북유럽신화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라그나로크에 등장하는 것은 남신들 뿐이다. 여신들, 특히 프레이야나 스카디 등 굵직한 역할을 맡은 여신들도 있는데, 라그나로크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헬의 군대는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정작 헬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발키리는 활약을 하는 것으로 쓰여 있지만 정작 그 오랜 세월동안 모아온 인간 전사들로 이루어진 군대, 에인헤랴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저 신들 곁에서 싸운 인간들, 정도로만 언급하고 그친다. 즉, 빈틈이 많은… ‘패관문학’에 가깝다.

아, 에인헤랴르라는 단어 자체를 지금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법하다. 하지만 라그나로크를 대비해서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인간들을 오딘과 프레이야가 발키리를 시켜 발할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을 에인헤랴르라고 부른다.
그나마 다른 북유럽 전승들-베오울프나 지크프리트에 대한 이야기에서 개인으로서의 영웅담으로부터 에인헤랴르의 모습을 엿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다. 그건 그저 뛰어난 개인일 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한 평범한 ‘병사A’가 에인헤랴르로 제련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그려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거 다 읽고 조금 울었다(…). 신화조차도 생략해버린 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라서…
미안하다, 북유럽신화를 너무 좋아해서 닉네임도 이 지경이 되고 첫 연재물조차도 북유럽신화-에다Edda의 현대각색물인 1인이다…;;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은, 단편으로 올릴 분량을 연재분으로 올렸다는 것이다.

 

회귀가 아닌, 성장의 순환
『발할라를 위하여』를 처음 접하면 전형적인 회귀물처럼 보인다. 죽고, 다시 깨어나고, 또 죽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회귀물의 껍데기를 빌린 가장 순수한 형태의 성장 서사다. 아스발은 바로 전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매번 새로운 전장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심지어 이 설정 자체가, ‘발할라’와 너무나 딱 들어맞는다.
노르드문드에서 도망친 겁쟁이 아스발, 아니 애스케르커. 투구와 갑옷을 벗고 도끼에 새겨진 이름을 지우려 애쓰던 그 병사A가, 49번의 죽음을 거쳐 라그나로크의 전장에서 “발할라를 위하여!”를 외치는 진정한 에인헤랴르가 되기까지의 여정. 이것이 이 소설의 진짜 이야기다.

 

개인의 속죄와 신화가 만나는 지점
이 소설은 개인의 처절한 속죄 서사와 북유럽 신화라는 거대한 세계관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작품이다. 명예를 내팽개친 겁쟁이가 끝없이 죽고 부활하는 저주 속에서 진정한 전사로, 리더로 거듭나며 용기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 이것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 리더십과 팀워크란 무엇인가, 역경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가치를 찾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첫 번째 죽음 – 이름을 버린 남자
그의 원래 이름은 도끼에 새겨져 있던 ‘애스케르커’였다. 그러나 도망치면서 그는 그 이름을 버린다. 도망치다가 떨어뜨린 도끼를 굳이 다시 집어서 새겨진 이름을 돌로 필사적으로 긁어내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자, 결국 도끼를 땅에 묻어버린다.
전사 애스케르커라는 이름은 이 순간에 한 번 죽는다(그리고 그 도끼가 먼저 발할라로 가버린다…).
이때 그는 실제로 죽진 않았지만 사실상 처음으로 ‘죽었다’. 애스케르커는 죽었고, 아스발이 태어났다. 전사로서의 명예를 버리고 생존을 선택한 순간, 그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빌더(건축가) 아스발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낸다. “전투에서 죽지 않더라도 소임을 다하면 발할라에 갈 수 있을 거야.” 노병의 말을 믿으며, 빌더 아스발로서 49년이나 성실하게 성벽을 쌓는다.
49년 뒤 늙은 아스발은 죽음을 기다리고, 대장장이는 그의 목을 치러 온다.
아스발이 도망친 겁쟁이란 사실은 이 요새의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속죄하며 쌓은 성벽과 방어기구 덕에 그들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 신화에 따르면 전장에서 죽지 못한 사람은 자연사로 죽기 전에 목을 쳐서 죽이면 전사들의 천국인 발할라로 갈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대장장이 산도르는 아스발의 목을 쳐주는 ‘의식’을 하러 온다.

아스발의 첫 죽음은 자신이 버렸던 명예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받으면서 끝난다. 자기 스스로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할라를 위하여’라고 외치며 아스발로서의 첫 번째 인생이 끝난다.

보통은 여기서 죄를 씻고 평온한 죽음을 맞았다고 끝났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거다.

 

저주의 시작, 그리고 성장의 순환
죽었는데 눈을 뜨니 또 전장이다. 심지어 뭔 상황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그대로 칼을 맞고 죽어버린다.
이후 49번의 물리적인 죽음은, 맨 처음 죽었던 ‘애스케르커’라는 이름을 다시 살리기 위한 부활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스발은 매번 죽을 때마다 경험이 데이터처럼 몸에 쌓인다. 화살이 날아오는 휘파람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적의 공격 패턴을 읽고, 방패와 도끼를 다루는 기술이 점점 정교해진다. 그는 단순한 병졸에서 생각하는 전사로 바뀌어간다.
아스발은 이곳이 혹시 발할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끝없는 전투와 죽음만 본다면 발할라가 맞긴 하다(그리고 사실 그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제림니르 고기도, 헤이드룬 꿀술도, 그리고 용맹한 에인헤랴르도 없었다. 아스발의 목표는 명예로운 죽음에서 생존을 위한 승리로 바뀐다.

 

신화적 장치로 확장되는 서사
그러나 저주는 단순히 전장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발은 죽음 이후 암흑 속에서 가름을 만난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발할라가 아니라 헬헤임에 속해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리고는 빛나는 활을 든 여전사 발키리가 나타나 이 모든 저주가 최고신 오딘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대충 살다가 헬헤임으로 떨어지든지, 진정으로 용기를 증명해 발할라로 가든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이 암흑 속을 헤메든지. 결국 선택지는 진정한 용기를 찾아 오딘의 심판을 받는 것뿐이다(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이제 이것은 한 인간의 성장을 신들이 지켜보는 신화적 장치가 된다.

발키리는 그에게 룬문자를 새겨놓는다. 그의 모든 경험을 힘으로 변환시켜주는 룬문자. 왼손에는 그가 지우고 싶어했던 빌더로서의 49년이 깃들어 성벽 수리와 제작 능력, 방어 능력이 있다. 오른손에는 이 저주 속에 경험치로 쌓인 싸움 실력.

“네가 싸운 방식대로 너는 강해질 것이다.”

그가 부정했던 과거와 저주라 생각했던 현재가 모두 그의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살면서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과거 실수가 예상치 못한 때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단순한 회귀물이 아닌 진정한 성장물인 이유다.

 

리더로 거듭나는 험난한 여정
아스발은 이제 어느 순간부터 ‘대장’이라는 호칭이 붙는 자리에서 부활한다.
오인장으로 리더가 된 아스발. 하지만 리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는 급박한 상황에서 팀의 기동성은 생각하지 않고 덩치만 큰 거한을 팀원으로 뽑는 바람에 지원 타이밍을 놓쳐서 동료를 모두 잃는다. 거기다 분노에 차서 달려들었다가 허무하게 죽는다.
리더십의 고전적인 함정.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개인 전사처럼 생각했다. 팀원을 뽑을 때도 팀의 시너지나 임무를 고려하지 못하고 개별 유닛만 선택했다. 그제서야 그는 죽더라도 적이 쉽게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깨달음은 언제나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이번엔 심리전에 말려들어버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한다. 대장은 팀원들의 멘탈도 관리해야 된다는 걸 깨닫는다. 아스발이 리더로 성장하는 동안, 매번의 실패는 그를 더 나은 지휘관으로 만들어간다.

 

개인의 저주를 넘어 신화적 사명으로
아스발이 리더로 성장하는 동안 이야기의 스케일은 신급으로 발전한다. 로키가 헤임달의 신물인 뿔피리 걀라르호른과 피흘리는 칼 호푸드를 훔쳐간다. 아스발의 싸움은 이제 개인의 저주를 푸는 차원을 넘어서 신들의 신물을 찾는 사명이 되어버린다.
대신에 신들은 아스발에게 버프템(?)을 챙겨준다. 브리싱즈(브리싱가멘) 문양에서 황금빛 불꽃이 일렁이며 시간이 느려지고 황금 갑옷이 씌워지는 것이다.

아스발은 이제 어엿한 천인장이다. 그는 걀라르호른을 들고 있는 적장과 마주하고, 그가 던진 도끼가 걀라르호른을 든 적장의 손목을 날린다. 그때 시간이 멈추고 오딘의 늑대들이 나타나 뿔피리를 회수해간다.
영웅적 승리. 하지만 뒤따르는 건 허무함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위해 길을 열어주었던 친위대가 전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도 칼에 맞아 또 죽는다. 아스발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동료들의 희생 위에서 얻은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아스발은 이번만큼은 정말로 발할라로 가고 싶었다.
죽기 싫어서 도망치고, 자신의 이름도 버리고 명예도 버렸던 도망자 병사 A가, 그저 헬헤임에 떨어지기도 싫고 암흑속을 헤매는 것도 싫어서 싸우던 겁쟁이 아스발이, 드디어 스스로 발할라에 가길 원하게 되는 순간이다.

 

수천 번 죽어도 좋다, 동료들과 함께 싸울 수만 있다면
다시 살아난 아스발은 완벽하게 훈련되지 않은 병력으로 싸우기보다 혼자서 적을 처리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고 혼자 싸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꾸 뒤에서 기습을 당하고 잔부상이 쌓인다. 파상공세를 서너차례 버티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스발은 또 쓰러진다.

다시 나타난 발키리를 보며 더는 동료들이 죽는 꼴을 못 보겠으니 차라리 헬헤임으로 보내달라고 말한다. 발키리는 그에게 진짜 발할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발할라는 죽음의 고통이 없는 천국이 아니었다. 그의 동료들이 낮에는 치열하게 싸우고 밤에는 함께 술을 마시고 서로의 실력을 칭찬하며 내일의 싸움을 기약한다. 서로 사정을 봐주며 다치지 않게 싸우는 전투가 아니었다. 지금껏 아스발이 싸워온 전장보다 더 치열했다. 조금만 집중을 잃어도 상대의 무기가 급소 곳곳으로 날아들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발할라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독자조차 발할라에 가보고 싶어질거라 확신한다.

“대장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왜 없지?”

“대장은 아직 죽지 않았을 걸. 대장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그가 영원히 미드가르드에서 우리 성을 지키고 있었으면 좋겠어. 마누라랑 두 딸을 위해서라도.”

“그렇긴 하지. 그래도 그가 이쪽에서 우리 편으로 싸우면 방금처럼 쉽게 지지는 않을 텐데.”

전사들의 대화는 전사다웠다.

전사들은 죽어서도 아스발을 그리워한다. 함께 싸우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로 발할라의 본질이다. 화려한 연회도, 불사의 몸도 아닌,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발키리의 질문에 아스발이 답한다. 그도 동료들을 “무척” 그리워한다.

“같이 싸우고 싶나?”

발키리가 물었다.

“무척.”

이 짧은 대화 속에 발할라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발할라, 가고 싶습니까? / 네에에에!! 제발요!!! / 응 지금은 안돼 돌아가 칼 찾아와)

그제서야 아스발은 진정한 용기를 깨닫는다. 곁에서 싸우는 동료도 나만큼 강하고 내가 쓰러져도 내 뒤를 봐줄 것이라는 동료에 대한 신뢰. 그것이 용기의 핵심이었다.

 

아스발의 여정 자체가 발할라
필자는 게임 ‘마비노기’를 초창기부터 했던 유저다. 여신을 구하러 저세상에 있는 낙원인 ‘티르 나 노이’에 갔을 때 글라스 기브넨의 혼은 유저에게 이곳은 낙원도 천국도 아니라고 말하며 충격적인 말을 덧붙인다. “당신이 있던 그곳이 진정한 낙원, 티르 나 노이입니다.”

거기가 낙원이라고? 사기 당하고 서로 싸우고 치고박고 쓰러지고 일어나던 그 난장판이 낙원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아스발에게 발할라는 다른 곳에 있는 천국이나 낙원이 아니었다. 함께 믿고 싸우는 동료들이 있고 그들의 곁에서 싸울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발할라였다.
발할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발할라는 아스발이 49번의 전투를 거치며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그 순간순간이다. 후드림과 케네스, 오라스와 함께 등을 맞대고 서있던 그 순간들. 서로를 믿고, 서로의 뒤를 봐주고,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그 전장들이 바로 아스발의 발할라였다.
산도르가 목을 칠 때 “발할라에 자신을 위한 자리는 없으리라” 알고 있었음에도 “발할라를 위하여”라고 답했던 아스발.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발할라는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진정한 에인헤랴르의 탄생
그제서야 아스발의 전투 스타일도 달라진다. 내가 물러서지 않으면 내 동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부대원들은 서로의 등을 완벽히 맡기는 진정한 의미의 에인헤랴르로 탄생한다.
38번째 전투 이후, 아스발의 전투는 달라진다. 더 이상 혼자만 강한 전사가 아니라, 동료들의 강함을 믿고 그들에게 자신의 뒤를 맡기는 지휘관. 49번째 전투에서 본영 중앙에 고립된 50명이 외치는 “우리는 우리가 지킨다”는, 진정한 에인헤랴르의 함성이다.
“겁쟁이들.” 아스발의 한마디에 동료들이 웃었다. 적에게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보냈다. 그들은 이미 아스발의 ‘에인헤랴르’였다.

 

라그나로크,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 모든 시련을 통과한 아스발이 선 곳은 라그나로크가 벌어지는 비그리드 평원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수만 명의 에인헤랴르 동료들과 신들이 함께 서 있다.
거인 수르트가 불의 칼을 휘두르며 걸어오고, 무지개를 건너 무스펠의 아들들이 나타나고, 서리 거인과 펜리르, 요르문간드가 땅과 바다를 뒤흔든다. 성벽 너머에선 헬헤임의 시체 병사들이 올라온다. 어쩌면 자신도 저들 중 한 명일 수 있었다.
헤임달이 걀라르호른을 불고, 하늘에서 오딘과 토르가 내려온다. 로키의 발치에는 이미 익숙한 가름이 붉은 눈을 이글거린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정체성이었던 애스케르커의 도끼를 꺼내 들고 외치며 달려나간다. “발할라를 위하여!”

소설은 한 명의 겁쟁이가 마침내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웅으로 거듭나며 신화적 대서사시의 막이 오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들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지만,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영웅이란 무엇인가? 용맹함인가, 강함인가?
아니다. 영웅은 동료를 믿는 자다. 겁쟁이였던 아스발이 진정한 영웅이 된 것은 그가 강해져서가 아니라, 동료의 강함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스발은 동료를 믿고 그들의 힘을 이끌어나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영웅이 되었다.
진정한 용기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동료에 대한 깊은 신뢰와 공동의 목표를 위한 헌신이었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성장해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얻었던 아스발처럼, 우리도 매일 크고 작은 좌절과 실패를 통해 성장해나간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당신도 발할라에 가보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당신의 일상 속 어딘가에 이미 작은 발할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이, 용기를 내는 그 순간이 바로 당신만의 발할라일 테니까. 당신에게는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있는가? 일단 나는 없는 것 같다…ㅠㅠ서글퍼서 더 울었다…

 

ps. 필자가 지금까지 쓴 리뷰 중 제일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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