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의 연쇄 공모(비평)

대상작품: 톱니바퀴 (작가: 양버터, 작품정보)
리뷰어: 나르디즐라, 10시간 전, 조회 14

1.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어느날 김봄달래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인 기오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백방으로 찾아다녀보지만 행방은 묘연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스토킹 당하고 감시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기오와 함께 놀던 아이들의 부모님을 만나게 된 후, 기오와 친구들이 염 어르신의 손자 상수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봄달래 할머니는 염 어르신에게 가 사과를 드리지만 염어르신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칼을 들고 위협을 하게 되죠. 그렇지만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제압되고, 기오와 아이들은 염어르신에 의해 지하실에 갖혀서 모진 일들을 당하고 실종된 것으로 암시됩니다. 그리고 김봄달래 할머니는 지병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3.

호러와 스릴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둘 다 독자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동일합니다. 여기서 부정적인 경험이란, ‘스토리의 질이나 상태가 나쁘다’가 아니라, 주인공의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며 동일시한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최후에 이르러서는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파국이라는 관점에서 러프하게 보자면 호러와 스릴러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 보입니다. 호러의 경우 파국으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스릴러는 파국에 이른 상태에서 그 이유를 추적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프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보겠습니다. 호러에서의 경험은 두려움, 공포입니다. 이는 알 수 없는 것에 의해 자신이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상상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으로 그 경험을 확장하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안전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며 쾌감을 얻습니다. 이 지점에서 알 수 없는 것에 의해 사태는 규명되지 않습니다. 오직 명료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가적인 판단을 유보시킬 뿐입니다. 스릴러의 경우 서스펜스를 중심으로 스릴을 전달합니다. 서스펜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한해 긴장을 일으키고, 결말에 이르러 그것을 해소시키고자 하는 기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립을 강조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해소에 이르러 ‘무지’의 상태에서 ‘앎’으로 전환하여 쾌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런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양버터 작가님의 소설 「톱니바퀴」는 호러와 스릴러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합니다. 아이들이 실종된 상태에서 주인공은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리고 그 실체가 드러난 순간 파국은 명징하게 직조됩니다. 다만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병리적인 증세를 바탕으로 사건의 결과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주인공에게 모습을 드러낸 상수는 진짜 상수였을까요? 아니면 주인공의 환각이었을까요. 지속적으로 제시된 감시와 스토킹은 실제 벌어진 일이었을까요? 지하실에서 발견한 끔찍한 것들은 정말로 벌어진 일이 맞을까요? 답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끔찍한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며 답에 대한 유보를 통해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4.

소설은 인간의 악의가 연쇄 되는 것을 묘사합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하나가 굴러가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상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들의 굴레. 굴레의 원인으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순간 파국은 시작됩니다. 그 파국의 전개에 있어 작가님은 의도적으로 상황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시점의 변화입니다. 소설의 큰 얼개 속에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김봄달래 할머니일 것입니다. 그러나 김봄달래 할머니의 시선으로 묘사된 현실은 어쩐지 불안과 환각이 점진적으로 심해집니다. 이 지점에서 경찰의 시점을 교차해 넣습니다. 만약 김봄달래 할머니의 시점만을 유지해나갔다면 이 사건에서 발생한 잔인함이 정말 진실일지 아닐지 판단할만한 객관적인 기준이 흐려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두번째 시선을 넣음으로써 김봄달래 할머니가 겪은 일들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즉,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함으로써 오히려 둘 사이의 간극을 강조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김봄달래 할머니의 병입니다. 진찰을 받을 때 의사들은 우스갯소리로 ‘초능력을 얻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주인공의 두통과, 지속적으로 묘사되는 스토킹, 그리고 죽었는 지 살았는 지 모를 인물들과의 만남은 당위성을 얻습니다. 이는 일종의 반전으로 기능하여 이야기의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만, 동시에 무엇도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중심 인물이 김봄달래 할머니인 이상 환각인지 실제인지를 규명할 수 없으니까요.

 

5.

이 두 가지 지점은, 양버터님의 소설이 호러와 스릴러 둘 사이에 걸쳐져 있음을 시사합니다. 스릴러로써 서스펜스를 구가하면서도 동시에 호러로써 공포감의 망설임을 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악의가 있습니다.

이 악의 위의 인물들은 모두 입체성을 띕니다. 사고의 가해자가 된 기오는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었으나, 시골에 오고 난 후 되레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가 됩니다. 염 어르신은 기오와 주변인들의 가해의 피해자가 된 상수의 가족이었고요. 그리고 기오의 가해자인 염 어르신을 기오의 가족인 김봄달래 할머니가 파헤칩니다. 이 얽히고 설킨 악연의 고리의 결말은 김봄달래 할머니의 마지막을 통해 누구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비일상이 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함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상처를 가진 채로 산 자는 죽지 못해 살아갑니다.

독자는 그런 황폐한 현실을 보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이 씁쓸한 입맛을 삼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이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도 있겠습니다. 호러의 기능은 그런 것이니까요. 그리고 무엇을 배격해야하는 지, 수용해야하는 지를 암시적으로 알려주기도 하고요.

 

6.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떠오르더라구요. 빠른 호흡과 진실과 거짓을 뒤섞으며 전개해나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많이 올려주세요.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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