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주체, 욕망의 대상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흉조(凶兆)의 새 (작가: HY, 작품정보)
리뷰어: soha, 17년 7월,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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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미 부서져 있는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처럼 판타지 장르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장르의 특성상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채로 몰아치는 이미지들은 독자들을 혼란시키고, 이 와중에 등장인물마저 이해할 수 없다면 독자들은 글을 읽으면서 몸을 고정시킬 부표조차 잃어버린 채 이야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무엇이 이야기에 중요한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구분할 수 없다면 인물들의 상호작용 또한 모호해지고,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없기에 줄거리도 그 힘을 잃어버린다.

다행이도 이 소설에는 소설 끝까지 일관성 있게 스스로의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가브리엘이다. 이 소설은 3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으나,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가브리엘의 관점이 관찰자의 객관성 사이로 묻어나온다. 가브리엘이 주로 관심이 있는 대상은 이브이기에, 이브에 대한 소설 속 설명은 가브리엘의 마음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리뷰에서는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소설의 얼개를 다시 구축해보고, 이를 통해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되도록 논리적 비약은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작가의 의도에 빗나가는 부분이 분명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점 미리 당부해두고 시작하겠다.

가브리엘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는 소설 후반부의 신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만은 버리지 못하겠나이다!”

이 대사는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해준다. 가브리엘은 이브를 버리지 못한다. 482-487에서 작가는 약간은 적나라하게 가브리엘과 이브간의 관계를 묘사한다. 그러나 482에서 나타나듯이 이브의 영혼은 이미 해리되어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397에서 해리된 후 이브의 상태가 묘사되는데, 이러한 상태의 이브가 누군가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므로 482-487에서 독자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가브리엘이 이브를 욕망한다는 것 그 뿐이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면 글에서 약간 석연찮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소설 도입부에서 가브리엘과 이브와의 장면이 묘사되지만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묘사되지 않는다. 23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이런 상태로 흘러갔으며, 이브는 그 도중 영혼이 해리된 후 말을 잃어버린 듯하다. 여기에 482-487에서 묘사된 관계를 같이 생각해본다면 묘한 암시를 발견할 수가 있다. 소설을 설명할 때 소설 밖의 내용을 끌어오는 것은 지양해야할 바이지만 작가가 ‘두근거리는 로맨스, 백합’ 리뷰에서 이 소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어 이를 옮겨보겠다.

특수한 경우로, 위에 언급했던 ‘흉조의 새’라는 글에서는 녀+녀 구도가 자손을 갖지 못하기때문에 채택된 구도이기도 하다. 아담+이브는 인류를 남긴 반면, 여성형 대천사 가브리엘+이브는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가브리엘이 욕망의 주체로서 욕망의 대상인 이브를 취하려고 한다면, 위에서 작가가 직접 언급했듯이 이 관계는 자손을 남길 수 없다. 물질적인 욕망의 결과를 얻을 수 없기에 욕망은 보상되지 않고, 이브의 영혼은 이미 해리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정신적인 보상 또한 없다. 가브리엘은 욕망의 주체, 이브는 욕망의 대상으로 그들 간의 관계는 고정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가브리엘의 욕망은 충족될 수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가브리엘과 이브를 중심으로 다시 써 보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암시들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249-336에서 가브리엘의 아담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373-399에서는 욕망의 대상이 된 이브의 심경과 이브에 대한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가브리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03에서 아담을 비난할 때 ‘남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가브리엘의 말을 482-487과 연결시켜 본다면 글에서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욕망의 주체와 욕망의 대상으로 고정된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249-336에서 아담이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가브리엘이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담의 중반부의 행동과 결말부의 행동 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고, 이런 와중에 아담을 리뷰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웠다. 또한 검은 구체 등 글에 존재하는 많은 이미지들에 대한 분석 또한 어려웠다.

이렇듯 글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제쳐두었기에 나로서는 결론을 내리기가 조심스럽다. 나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집중하였을 수도 있고, 이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 리뷰는 가능한 해석들 중 한 가지를 서술한 것일 뿐이며, 어떤 의미에서도 정답은 아니다. 글을 해석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시작점정도로만 봐주었으면 좋겠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작가 및 이 리뷰를 읽고 계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글을 분석하겠다고 꺼내든 무기가 나에게는 아무래도 과했던 모양이다. 글에 휘두르는 칼날에 내 손이 베일 것이 두려워서 부끄럽게도 여기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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