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머리, 토끼는 간, 그리고 불청객은…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불청객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5월 31일, 조회 44

거북이에 대한 노래로 <구지가>를 아는 분은 많으실 겁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가야의 건국 신화와도 연결되는 <구지가>의 거북이는 왕을 내려주는 신령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이 거북에게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며 협박하기도 합니다. 신령한 존재를 사람들이 협박하여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는 내용은 일반적인 축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거북이는 아예 무언가를 빼앗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통일신라 성덕왕 시기의 <해가>가 그러합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해가>에서 거북이는 수로부인을 빼앗은 해룡을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이 때에도 거북이에게 거역하면 구워 먹겠다는 말로 사람들이 협박합니다. 이제는 축원을 넘어서 아예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도 쓰이는군요.

 

더 나아가, 거북이는 속이는 존재로도 여겨집니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판소리 <수궁가>나 이에 기반한 판소리계 소설 <수궁전>(= 토끼전, 별주부전)이지요. 여기서는 거북이가 토끼의 간을 노립니다. 이를 알아챈 토끼도 그냥 당해주지는 않죠. 서로 엎치락뒤치락 속고 속이는 관계가 이어집니다. 마치 지구연합의 땅거북들과 루나시티의 달토끼들처럼 말이지요.

 

땅거북들은 루나리안, 즉 달토끼들을 착취하는 존재입니다. 땅거북 중에서도 특히 극단 지구주의자들은 달토끼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망상들을 투사하며 모두 멸절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머드는 이러한 극단 지구주의자들을 혐오합니다. 그래서 비록 도둑이지만 루나시티에 속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도둑질이 땅거북들의 부를 빼앗아 분배하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다만, 피투와 케니는 루나리안 태생이면서 다소 미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피투는 시머드가 만족할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편이지만, 엄연히는 달토끼를 등쳐먹는 달토끼입니다. 케니는 당사자면서 극단 지구주의자의 망상과 수탈에 관심이 없어보이고요.

무엇보다 두 사람은, 첫등장부터 시머드의 호화로운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습니다. 케니는 한술 더 떠서 잡동사니를 털고 있었습니다. 시머드는 피투가 가져온 ‘땅거북인 척하는 달토끼’를 등쳐먹는 치밀한 계획을 들으면서도, 정신산만하게 구는 케니에 대한 묘한 불편감을 가집니다. 이는 피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케니 또한 자신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이제는 둘이 마르스씩, 그러니까 자기 집에서 약까지 빨겠다고 난리니 시머드는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을 느끼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불청객으로 인식합니다.

 

이런 와중에 케니가 손에 넣은, 내중력장치로 보이는 은고리는 독자에게도 불청객입니다. 이 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께끼로 가득합니다. 내중력장치를 다룬 적사각 작가님의 <스노그의 문제>를 읽고 다시 보더라도 풀리지 않는 점들이 많습니다. 케니가 깨달았다는 그 고리의 재질, 케니가 그 고리를 목에 씌웠을 때 속삭인 목소리의 정체, 케니가 그것을 쓰고 난 다음에 벌어진 참극, 타로마 섬을 포함한 카로라 제도 전역을 휩쓴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 애초에 시머드의 집에서 발견된 이유까지. 그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끝납니다.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유야무야 끝나버렸다는 점에서 전작 <레코드>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은고리는 <레코드>에서 벌어졌던 비이켄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뤄집니다. 비이켄 사고는 돌이켜보면 분명한 징조들이 있었으며, 두 세력 사이의 정치적 알력다툼에 사용되었을지언정 표면상으로는 확실하게 끝을 맺었죠. 하지만 이 은고리는 자신이 아주 중요하고 수상쩍은 물건임을 대놓고 드러냈으며 실제로도 수상쩍은 일들을 일으켰다는 정황까지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리고 경찰에 의해 덮어지기만 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맥거핀이라기엔 너무 무겁고, 떡밥이라기엔 너무 노골적으로 다뤄진 이 은고리는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등장할 거라는 느낌은 분명하지만 기약이 없을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등장한 것처럼 또 어디선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나타날 거라는 찝찝함만 남아있죠.

 

분명한 것은, 이 이야기의 불청객들은 찝찝한 방식으로 목숨을 빼앗겼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걸맞은 결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죠. 무차별적인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을 정도의 불청객이었을지.

다만 목숨을 빼앗은 쪽도 불청객인만큼, 언젠가는 정체가 드러나고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거북이에게 머리를 내놓으라고 겁박한 자들은 세월의 끝에서 멸망했고, 토끼에게 간을 내놓으라고 속인 자들은 역으로 속아버려 몰락했듯이.

 

좋은 작품 써주신 적사각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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