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웅본색’으로 시작되고 유덕화와 주윤발 같은 배우들을 자동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그 시절의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겨져있다. 그래서인지 한없이 어두운 분위기를 바탕으로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 배신이 그려지며 복수의 총알이 남발되는 영화들을 보면 -실제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친숙하게만 느껴진다. <백사(白蛇)> 또한 다르지 않았다. 너무 친숙해서, 그래서 그저 반가운 그런 소설이었다.
<백사(白蛇)>를 표현하자면 ‘짧지만 강렬한!!’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분량도 많지 않고, 문장도 덩달아(?!) 짧게 쓰였다. 하드보일드의 일반적인 특징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그런 간결한 문장과 어울리게 전개 또한 거친 듯 빠르게 펼쳐지면서 단숨에 소설을 읽어 내려가게 만든다.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강렬한 느낌이 남겨지기에, 또 그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으로 느껴지기에 ‘짧지만 강렬한!!’ 이라는 표현 이상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깊은 어둠 속, 자욱한 싸구려 담배 연기를 떠오르게 하는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현견은 경찰과도 함께하는(?!) 청부살인업자이다. 라우 경사에게 등영을 제거하라는 의뢰를 받고 일을 하게 되지만 그 끝에는 생각도 못했던 배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백사(白蛇)>의 내용 전부이다. 너무 짧은 분량이기에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직접 읽어보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간략히 정리해봤는데, 역시나 너무 짧다.
짧다는 것은 그만큼 이런저런 설명이 부족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뭐, 사실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그저 불친절한 작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그냥 어떤 소설이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툭 던져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왜?’라는 질문만이 무수히 쏟아지게 만들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짧음 뒤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이 더없이 즐겁게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다시 말해, 실제 작품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보다도 아직은 들려주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큰 작품이랄까?! 어떻게 현견은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떻게 라우 경사와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라우 경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고, 등영은 또 어떤 인물인지를 궁금해 하면서, 정답이 없다는 사실에 이런저런 상상력을 발휘해보게 되는 것이다.
장편 쓰기 전 외전과 같은 느낌으로 써봤다는 작가의 코멘트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말하지 않은 많은 사연들은 장편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사연들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행여나 끝까지 그 사연을 들을 수 없을지라도- <백사(白蛇)>는 짧다고 단순히 이게 뭐야?!, 라는 허무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상상들과 또 다른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라는데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짧지만 강렬한!!’ 에 더해서 ‘그리고….’ 을 덧붙여야 될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취향 혹은 추억으로 인해서 더 좋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즐거움과 앞으로의 기대에 부합하는, 그래서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을 좋은 장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