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SF 장르는 현실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옷 입고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하거나 퇴보한 세상을 통해서 결국은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 나오는 뇌에 삽입된 내장 칩도 아직은 꿈 같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20년도 전에 이식 성공했더라고요… 그래도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접속하는 브레인 네트워크는 없지만요!
그렇지만 손가락만 움직여서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은 있습니다. 같은 주소로 접속해도 접속한 사람의 평소 활동 내역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이트도 있고요. 이런 기술이 없더라도, 정보의 수용자인 사람부터가 원하는 것만 골라서 보고 기억합니다. 그건 뇌에 칩을 심든 심지 않았든 변하지 않겠죠.
하지만 괴담의 주인공인 전단지는, 관측자에 따라서 정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다. 심지어 감각이 아닌 기계로 측정해도요.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는 전단지가 날아다니며 사람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보면 죽는 저주가 적힌 것도 아닌데 왜 그게 오싹한 걸까요? 전단지 한 장 같은 게 있든 없든 큰 문제도 아닌데요.
그래서 이런 괴담이 있는 줄도 몰랐던 설란이 등장합니다. 분명 동거인이 같은 공간에 존재함에도 느낄 수 없어진 설란은 사라졌는지도 모호한 동거인인 시서를 찾다가, 시서가 종종 접속하던 괴담 커뮤니티에서 존재하는지도 모호한 전단지를 알게 되죠. 전혀 연관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집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느낄 수 없고, 통증이나 기억도 사라지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 ‘헤이트 이레이저’라는 이름의 기능에서 온 게 의미심장합니다. 개인의 개성에 따른 취향과 선호가 있는 한 세상의 모든 걸 좋아할 순 없지만, 그걸 자기 인지에서 지워 버리는 건 다른 일이죠. 그리고 이 시점에서 제가 싫어하는 걸 무작정 피하며 살아왔단 걸 떠올렸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보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이유로요.
칩 관리국은 해당 기능을 제거하고, 설란과 시서는 알고리즘 기능을 끄고 딥 서치 기능을 켠 채 같은 세상을 보기로 합니다. 그들과 달리 뇌에 내장 칩이 없는 저는 어떻게 해야 제가 지운 사람들을 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