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슬은 자료를 쓱 훑어보고는 황당한 표정으로 발표를 맡은 후배를 바라보았다. 슬과 눈이 마주친 후배는 본인도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발표를 시작했다.
“…미리 배포한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조사 주제는 ‘전단지 괴담’입니다.”
자료를 미리 훑어보지 않은 연구원들이 곳곳에서 허, 하는 황당한 숨을 뱉었다. 연합체의 가장 엘리트들만 모아 놨다는 이 우주 관리국 연구팀에 다른 것도 아니고 ‘괴담’의 조사라니. 슬은 대체 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기에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사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나 생각하며 빠르게 자료를 훑기 시작했다.
괴담의 시작은 어느 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나의 글이었다. 요약된 내용이 자료에 첨부되어 있었으나, 슬은 브레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료에 첨부된 링크를 타고 곧바로 괴담이 시작된 원문 글을 찾아 들어갔다. 슬이 눈만 자신을 보고 있을 뿐 이미 머릿속으로는 다른 곳을 여행 중이란 사실을 후배도 눈치챈 기색이었으나, 슬은 후배의 시선을 무시하고 빠르게 원문 글을 읽어 내렸다.
「내가 얼마 전에 친구랑 같이 RK-01-116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말이야, 좀 기묘한 일을 겪었어. 나는 친구랑 그냥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걔가 갑자기 인상을 확 쓰면서 벽을 노려보는 거야. 나는 벽에 뭐가 있나 싶어서 벽을 쳐다봤지.
01 지역 사람들은 알겠지만, 01 지역은 벽면 디지털화가 끝나서 벽이 다 스크린으로 바뀌었거든? 116 거리 벽면도 당연히 스크린으로 바뀌었고. 나는 뭐 스크린에 이상한 거라도 나왔나 했어. 정치인 누구를 지지한다거나, 누구를 끌어내리라거나 그런 거나 이상한 종교에 들어오라거나 하는 그런 거. 그래서 걔가 그렇게 인상을 썼나 했는데 스크린에서는 그냥 아이스크림 광고가 나오고 있더라고.
인상 쓸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는데, 걔가 법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막 쉬더라고. 걔가 직업이 그쪽이라 준법정신이 좀 강하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금 본 광고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래서 광고에 뭐 문제 있었냐고 했더니 걔가 그러더라. ‘광고가 아니라 저거 말이야, 전단지.’
전단지? 나는 다시 벽을 쳐다봤어. 자원 보호법 때문에 종이 전단지가 불법이 된 건 나도 알고 있었는데, 벽에서 전단지 같은 걸 본 기억이 없었거든. 다시 봐도 없었어. 그냥 개척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라는 여행사 광고가 나오고 있는 스크린만 있을 뿐.
내가 아무것도 없는데 뭔 소리냐고 했더니 걔가 너야말로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저기 있잖아, 하고 손으로 벽을 가리켰어. 근데 걔가 가리키고 있는 데를 봐도 내 눈에는 전단지 같은 건 안 보이더라고. 걔도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아이렌즈로 바로 전단지가 붙은 벽을 찍어서 내 브레인 네트워크로 보내줬어.
다들 알다시피 아이렌즈는 그 사람이 보고 있는 걸 그대로 찍어주는 기능이잖아. 그걸 브레인 네트워크로 직접 내 뇌에다 쏴 줬으니 걔가 보고 있는 거랑 내가 받은 이미지는 똑같아야 했어. 그런데…없었어. 걔가 보내준 이미지에도 전단지 같은 건 없더라고.
나는 걔가 나를 놀리나 했어. 근데 걔는 반대로 내가 자기를 놀리나 싶은 표정이더라고. 걔가 여기에 있는 게 왜 안 보이냐고 그러면서 전단지를 떼서 내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는데도 나는 전단지가 보이지도 않았고 손에 뭐가 잡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도 못했어. 그러고 나니까 엄청 오싹한 거야. 걔나 나나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지. 그건 대체 뭐였을까? 전단지는 진짜 있었던 걸까?」
슬은 링크에서 나와 다시 머릿속에 자료를 띄운 후 후배를 바라보았다. 후배는 어느덧 해당 벽면의 이미지입니다,라며 116 거리의 벽면을 찍은 사진을 띄워 놓은 상태였다. 슬의 눈에는 그저 광고가 흘러나오는 스크린이 찍혀 있을 뿐, 전단지 같은 건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보시다시피, 전단지는 분명 붙어 있습니다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