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공포 감상

대상작품: 구조구석방원 (작가: 아소,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4월 11일, 조회 36

공포란 무엇인가. 나의 소유가 타인에 의해 침범 당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두려움이다. 다시 말해 소중하고 내밀한 나의 영역이 침해당할 때 사람은 강렬한 공포를 경험한다. 개체가 본능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이 ‘나의 것’에는 개인의 신념에서부터 나의 마음과 자유, 내가 가진 물질, 내 삶의 터전, 가족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어도 놓을 수 없는 것, 가장 지키고 싶고 그래야 마땅하다 믿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 그 자체다. 그러므로 성범죄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 가해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야생 상태를 넘어 사회를 꾸려가기 위해 어떤 합의를 했다. 상대가 허락하지 않은 선을 넘어 타인의 영역을 마구 짓밟지 않기로. 그러나 이 약속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 그때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자물쇠다. 나의 경제력으로 한 겹, 힘 있는 가족으로 한 겹, 건장한 체격과 근력으로 한 겹,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또 한 겹. 그리고 누군가는 아주 얇은 문과 자물쇠를 갖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그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 흙 묻은 신발로 방 안을 휘저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원치 않게 열려버린 문을 노리는 손길은 너무나도 많다. 이런 맥락에서, 다양한 취약함을 가진 계층은 성범죄와 같이 개인의 존엄을 침해당할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

 

<구조구석방원> 속 화자는 그간 당연한 듯 잠겨있던 자신의 걸쇠가 가진 위력이 백만 원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든다. 그래서 쉽게 게임으로 걸어 들어간다. 괜찮겠지, 설마,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하겠어? 원하는 대로 문을 잠글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숱한 여성들이 일상이라는 내기에 매번 뛰어들 때 되뇌던 그 말을 중얼대며. 어떻게 해도 문을 닫을 수가 없는데 매일을 살아내야 한다면 다른 길이 어디 있겠는가.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하면서, 세상이 말하는 대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아파서 병원에 가고 쉬기 위해 공원에 가면서 매번 피할 수 없는 내기를 해야 했던 여성들은 화자가 처한 상황이 어디를 향해 치닫는지 선명히 예감한다. 그 끝에 만날 결과가 백만 원 따위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리란 사실도. 그러나, 그 남자는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것은 말 그대로 게임일 뿐이었으니.

 

영원한 안전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건강한 몸, 월등한 신체능력, 대문이 두터운 집. 모든 것은 어느 날 찾아온 찰나의 순간, 아주 작은 사건으로 깨어질 수 있다. 장애, 큰 병, 가정의 파괴, 재산의 소멸. 갑작스레 맞이한 변화는 사람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던 작은 자물쇠 하나가 얼마나 많은 위기와 침범으로부터 나를 지켜줬는지 알게 된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던 시절 상대적 약자가 겪던 세계를 부정하고 왜곡하고 무시했던 경험은 이런 순간에마저 자신을 닮은 얼굴을 찾아내지 못하게 만든다. 문 좀, 닫아줄래요? 열린 문이라고 맘대로 들어올 순 없는 것이라고, 저들에게 말해줄래요? 끝내 이 말을 할 수 없게 된 후에도 동기가 겪었을 피해는 보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그리하여 이 소설은 지독히 흔하고 특별한 공포가 된다.

 

소설은 현실의 재현이되 그 이상을 품기 마련이다. <구조구석방원>은 전복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불편하되 불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실을 재조립한다. 그래서 비로소 이 이야기는 공포 그 자체가 아닌 공포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가해의 잔혹함과 기이함, 피해자의 고통을 추적하고 드러내는 과정에서 공포의 장르적 가능성은 확장된다. 이것은 우리가 공포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임과 동시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지점으로 독자를 이끄는 요소다. 거기엔, 말해지지 못한 소설 밖 외침이 있다. 당신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내가 겪은 생생한 고통은 다 무엇인가요? 왜,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나요? 눈을 질끈 감고 뛰어든 일상이란 내기가 그리도 큰 잘못이었을까요.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소리내보지 못한 말들이 활자로 다가올 때, 독자는 이제 책을 덮고 나의 아주 작은 틈을 파고드는 손들을 노려본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문이 잠겨있지 않아도, 설령 이 모든 게 내기였다 해도 나는 누구의 침범도 허하지 않았단 사실을. 그러니, 문 좀 닫아줄래요? 내 치아는 뒤집혔고 내기는 끝났습니다. 현실이 이야기와 함께 속삭일 때 소설 그리고 독자는 마침내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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