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리뷰는 작품 전체와 결말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작품을 먼저 읽고 리뷰를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알림: 이 리뷰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한 명의 독자가 쓴,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오독이나 비약적 해석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 부탁드립니다. 소설의 제목에서 쓰인 단어는 ‘휴지통’이지만, 이 작품에서 제가 주목한 바를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본 리뷰에서는 ‘쓰레기통’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쓰레기통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쓰레기통 안이 어떤 곳인지 잘 모릅니다. 그냥 바깥에서 바라볼 뿐이죠. 냄새나고 싫고, 더럽고… 그게 쓰레기통에 대해 느끼는 대부분의 감상일 겁니다.
우리는 쓰레기통에 뭘 버릴까요. 쓰레기라고 생각되는 것은 다 버립니다. 작중 화자가 버리는 것처럼, 쓰던 원고, 콘돔, 코 푼 휴지, 죽은 벌레, 과자봉지, 치킨 뼈… 각양각색이죠. 이처럼 버려지는 쓰레기는 정해진 범주가 없습니다. 우리가 쓰레기라고 ‘규정’하면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을, 단순히 버려야 할 물질의 차원에서 벗어나 비물질적인 것에까지 범위를 확장해 봅시다. 우리는 무엇이든 형편없는 것, 쓸모없고 해로운 것, 버려져야 마땅한 것을 쓰레기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이 소설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받는 ‘동성애’에 주목합니다.
쓰레기와 신앙
재하는 휴지통을 믿었다.
이 황당한 첫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를 품고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쓰레기’와 ‘신앙’입니다. 과연 ‘무엇을 쓰레기라고 믿는가’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두 개의 상반된 종교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휴지통 종교’입니다. 휴지통 종교는 그 어떤 것이든 포용하며, 휴지통 안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쓰레기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구분이 없는 카오스, 혼돈의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입니다. 나름의 교리에 의해 옳고 그름이 갈리고, 동성애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자 ‘사탄의 현현’으로 취급합니다. 즉, 이 종교에서는 쓰레기로 구분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두 대립한 신앙의 충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요, 바로 기독교를 믿는 엄마가 (정말 극적이게도 용서와 구원의 상징인)십자가에 박힌 못으로, 동성애자이자 휴지통 종교 신자인 자신의 아들 재하를 때려죽이고, 죽은 아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입니다.
이 상황을 보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성적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죽이려 드는 종교와, 그런 그릇된 신념을 가진 엄마도 포용하려는 휴지통 종교. 둘 중 과연 어느 것이 쓰레기 같은 종교일까 하고요.
* 주의 : 저는 이 소설에서 배척을 행하는 주체가 단순히 ‘기독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단지 대유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봅니다. 또한 배척받는 대상 또한 단순히 ‘동성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는 마찬가지로 버려지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일 뿐이죠.
또 이런 것도 살펴봅시다.
누나에게 알바자리를 소개해 주며 고민 상담을 해오고 마음을 털어놓는 남동생 재하.
그런 동생의 뒷담화를 일삼고, 동생이 당한 폭행과 죽음을 외면하며, 동생에게 해 준 얄팍한 상담으로 얻은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써먹으려는 누나.
과연 어떤 쪽이 쓰레기 같은 인간일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하게 어느 쪽이 잘못했고 또 무엇이 옳다고 직접적으로 설파하진 않습니다. 다만 쓰레기통이라는 장치를 통해, 소외된 것들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버려지는 구조적인 비극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갈 곳 없는 동성애자를 받아줄 곳이 쓰레기통 밖에 없었던 것이죠.
쓰레기통을 거꾸로 하면?
옛날에 이런 농담이 있었죠.
일요일을 거꾸로 하면? 일요일.
쓰레기통을 거꾸로 하면? 쓰레기가 쏟아진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남동생의 이름이 하재하입니다. 거꾸로 해도 하재하.
양쪽이 둘 다 밑(下)인 대칭성을 가진 이 이름은, 저에게 쓰레기통 두 개가 서로 입구를 대고 맞붙어 있는 이미지를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쓰레기통의 바깥과 안이 아니라, 어쩌면 이쪽, 저쪽 둘 다 쓰레기통인 건 아닐까. 쓰레기통 입구의 동그란 링을 기준으로, 이쪽 쓰레기통 세계와 저쪽 쓰레기통 세계로 나눠진 게 아닐까 하고요.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재하는 어쩌면, 뭐든지 줄을 세우고 맘에 안 드는 것은 내다 버리는 이 ‘배척의 세계’에서, 모든 걸 받아들이는 저 ‘포용의 세계’로 건너간 건 아닐까 하고요. 그 세계에서 바라본 이쪽 바깥의 부조리한 세상은, 그 또한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통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