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한 안티로망스 메타 판타지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현대 마녀학 입문 (작가: 비티, 작품정보)
리뷰어: 일월명, 1월 25일, 조회 102

“(……) 마법은 자연에 대한 최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추구하는거야. 아무도 ‘마법은 왜 작동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는 않는단 말이야. (……) 마녀학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령이 고대 룬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감상을 느낄지 같은 감수성적인 부분 아니겠어?”

“(……) 마녀들도 엄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전이되는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가마솥에서 가마솥보다 거대한 두꺼비를 소환한다던지 그런게 불가능한거고.”

-류샤와 소피의 대화, <현대 마녀학 입문> 차례 中-

 

지극히 개인적이며 부정확하기 그지없는 의견입니다만 판타지 장르의 동력은 로망스―낭만성이라 생각합니다. SF가 논리성, 호러가 실현성을 지지대 삼아 독자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하듯이, 판타지는 세상이 직관적이고 이해 가능한 형태이며 또한 그렇게 작동한다는 믿음(또는 그러길 바라는 소망)을 충족시킵니다. 판타지의 독법에서 한 번 일어난 일은 일어날 일이기에 일어났을 뿐입니다. 자연 현상, 마법, 기적 모두 이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그마저도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문장이 성립하는 데에 마녀가 어떻게/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사실 불필요합니다. 마녀는 이미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니까요.

그렇기에 ‘그래서 마녀가 어떻게/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건데?’ 라는 질문을 굳이 던지는 건 판타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변태적인 행동입니다. 이를테면 현상학 학회에 가서 아르케에 대해 열변하거나, 켄타우로스를 MRI 촬영하는 짓인 거죠. <현대 마녀학 입문>은 이 짓(?)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여 성공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두 파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인 마법사 류샤가 마녀 소피의 도움을 받아 집필하는 논문 <현대 마녀학 입문> 본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 둘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려나가는 캠퍼스 라이프입니다. 한국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한국이 은마아파트 부지 정령들이 사람보다도 간절히 재개발을 외치고 침대가 사람이 되어선 3년 동안 자기 위에서 잔 주인에게 반말을 하는 곳이라면, ‘제 5장 정령 신앙’ 과 ‘제 13장 가구술과 저주술’은 이 일련의 사건 아래에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지 상세히 서술합니다. 이 두 텍스트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작품 속 세계를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짜내려 갑니다.

일상물이라는 특성 상 작품을 관통하는 큰 줄기의 서사는 없지만, 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니까요. 작품은 류샤가 <현대 마녀학 입문>을 쓸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을 그리는 데 온전히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기에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작품이 차용하고 있는, 현실의 방대한 인문 지식입니다. 인류학/민속학, 역사학, 언어학 등에 조예가 있는 독자라면 <현대 마녀학 입문> 본문 내용들, 가령 마녀의 기원 설화와 분류, 마녀술 등이 현실의 무속신앙과 신화학, 중-근대사, 룬어를 비롯한 각종 언어들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기치있게 활용하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치밀한 고증과 별개로 톡톡 튀어나오는 위트 넘치는 상상 역시 제 할 일을 해냅니다. 낚시 더럽게 못한다고 욕하더니 대뜸 논문 원고를 물고 도망가버리는 갈매기나 식용 용, 유해 조수 산타클로스(묘사를 보면 산타보다는 크람푸스에 가까워 보입니다만은.)같은 익살스러운 동물(?)들, 간첩 사건 때문에 마녀 성씨를 가지기 위해선 복잡한 공문서 처리를 통해 이중/삼중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아야 하는 다분히 한국스러운 상황, 간간히 제 4의 벽을 넘는 메타 개그까지. 일상 파트에서 작품은 시종일관 길고 웃긴 농담 같은 논조를 잃지 않습니다. 동시에 새삼스레 상기시킵니다, 그래, 이거 판타지 소설이지.

텍스트의 압박이 심하지만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주행이 어렵다면 일상 부분을 먼저 골라 읽다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라는 의구심이 들면 그때 <현대 마녀학 입문> 본문을 찾아 읽어도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전부 읽게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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