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리뷰를 시작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시작점은 여럿 있었습니다. <아르슬란 전기>와 <빈란드 사가>를 끌어다가 작품의 무게감을 다루는 방식의 공통점을 얘기하려고도 했고, <던전밥>으로 세계관의 사용법에 얘기하려고도 했고,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와 이 작품이 공유하는 인물서사의 문제점이라든지, 독살 사건 즈음에는 “<왕좌의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독살 사건을 보는 순간 드라마 시즌1이 오버랩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라고 도입부를 거의 정하기도 했습니다. 맨 처음은 <아라비아 밤의 종족>으로 서두를 시작하는 거였는데 이건 가장 먼저 폐기했죠.
마치 한 배에 탄 여러 사공들이 각자 모든 방향을 향해 노를 젓는 기분이랄까요? 그냥 다 쓰면 되지 않은가 반문하실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모든 게 다 이 작품의 일부분만을 설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의 문제점과도 이어집니다.
결국 47화, 즉 65~69화 파트에 이르러서야 여러 글감 중에서 한 가지만을 남기고 리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미덕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저로선 이 작품의 더 넓은 부분을 개괄할 수 있는 리뷰의 주제로서는 이하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뷰가 길어졌는데, 3~9매에 맞춘다면 이 글의 마지막 세 문단만 읽어주셔도 됩니다.
잠시 제 얘기를 하죠. 저는 이를테면 어떤 소설이 영화화되면, 그 소설만 읽든가 영화만 보든가 둘 중 하나만 봅니다. 애당초 영상 쪽을 거의 안 보는 편이라 이렇게 살아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친구들 덕분에 원작과 영상화 작품 둘 다 보게 되는 일이 늘었는데, 그로 인해 정말 뒤늦게도 저는 창작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건 작품은 형식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것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브릿지에 리뷰를 남기는 일에 있어 어려움 중 하나는 “작가가 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 저는 여러가지 “추측”을 갖고 작품에 대해 리뷰에 씁니다. 굳이 저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고전에 대해 여러 자기만의 해석을 떠올리죠.
그러나 브릿지에서는, 특히 리뷰를 쓰면 작가분에게 바로 알림이 가는 이곳에서는 그런 “추측”을 내놓기가 리뷰어로서는 꽤 껄끄럽습니다. 사실 쓰는 것까지는 괜찮습니다만, 그 리뷰에다 작가 분이 답글을 다는 순간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하죠. 뭐 이를테면 “이 장면은 이러이러한 의도로 쓴 게 아닐까요?”라는 리뷰에 대해 작가 분이 “아닌데?”라고 답글을 달면 그 한마디 만으로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사라집니다. 작가 본인이 아니라는데 저 혼자 “아니야, 당신은 이러이러한 심리로 이 부분을 썼을 게 틀림없어!”라고 해봤자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죠. 그 외 여러 이유 때문에 저는 리뷰를 쓰기만 하고 굳이 올리지는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그동안 이런 원칙을 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대해선 “추측”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더 나아가 해결법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감히 적어봅니다.
제 생각에 이 작품은, 많은 분량의 세계관과 인물에 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글 자체는 상당히 즉흥적으로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작가 분의 아마추어리즘(일관된 품질의 상품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의 반대 의미)에 의한 것이고요. 제 생각에 작가 분은 아직 장편소설을 많이 써보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추측입니다.
만약 작가 분이 한글을 배워온 조지 마틴이라면? 1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인의 몸에 빙의한 톨스토이인데 나만 못 알아본 것이라면? 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제가 브릿지를 떠나겠습니다.
아무튼 즉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초반 회차부터 조짐은 있었습니다만, 앞서 깔아둔 ‘65화’부터 그 즉흥성이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글이 들쭉날쭉해지기 시작합니다.
근데 들쭉날쭉한 게 왜 나쁜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면 저는 그에 대해선 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보면 안다.” 라고 밖에는요.
그럼에도 이 관점에 대해 일정부분 근거로 작용하는, 도시경관의 미추에 대해 어느 건축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다 쓰면 길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중구난방하지 않고 미적 통일감을 갖추려면 건물을 짓는 재료가 같아야 한다.”
그리고 예시로 산토리니 섬을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벽암록의 “은주발에 새하얀 눈이 소복이 담겨 있다”는 구절과도 이것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질성. 이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인류의 어떤 공통된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획일성과는 다릅니다).
저는 이 작품의 여러 시도들을 (재료가 같은 상황에서의)건물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재료 그 자체가 달라진 것이라고 봤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인용을 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은데, 그래도 아마 작품을 차분히 따라가신 분들은 호불호를 떠나 누구라도 공감은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작가 분이 바뀌었다고 들어도 납득을 할 정도입니다.
47화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바뀌어서 그렇지, 사실 그 이전에도 이런 조짐은 있었습니다. 아니, 이렇게만 말하면 좀 덤터기를 씌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3인칭과 1인칭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65화 이전 분량에서도 제 기준에서 작법의 괴리감이 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인물의 심리를 보여줌에 있어 그냥 설명조로 줄줄이 서술하며 퉁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할 리가 없는 설명을 1인칭으로 쓰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나는 브릿지에서 리뷰를 쓰고 있는 사람이다.”같은 생각을 제 스스로 갑자기 하기 시작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서술은 정말로 그 인물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독자에게 설명을 하기 위한 파트이고, 소설적으로 허용되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인물이 여럿이다보니 조연급 인물 시점이 나올 때마다 거의 매번 저러는데, 이는 ‘소설적 허용을 부득이하게 강조하게’ 됨으로서 마치 드라마 촬영에서 자동차 머리받침대를 빼는 것을 억지로 의식시키는 듯한 괴리감이 생깁니다.
‘저런 심리를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상황적 맥락을 일일이 마련해두다간 메인 스토리가 틀어질 텐데?’라는 의문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저 또한 답을 모릅니다. 다른 작가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구체적인 템플릿이 있는 건 아니고 대체로 감각적으로 처리하는 것 같긴 합니다.
47화로 돌아오죠. 저는 뭔가 이것저것 시도하고 싶으시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분명 작가 분도 뭔가 저런 작법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화를 꾀하신 것이겠습니다만, 저의 경우엔 아파트를 짓는데 절반까지는 콘크리트로 짓다가 나머지 절반은 한옥으로 전환한 듯한 당혹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앞서 추측했듯 그게 처음부터 설계도에 포함된 구상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도 들고요. 물론 47화 전후의 문체를 비교해보면 바꾸고 난 뒤가 더 좋다는 느낌도 들긴 합니다. 문단을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묘사라든지, 필력이 늘었다는 것은 거의 확연합니다. 대신 47화 이전을 기준으로 볼 때 가독성과 경제성을 잃은 듯 보입니다. “이렇게 대사를 쓰고 나서” 지문으로 바로 잇는 것이나 6줄 문단개행(아마 “이렇게 대사를 쓰고 나서” 지문을 바로 붙이는 게 이것 때문이 아닐지..)도 독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6줄 개행은 사실 독립적으로는 가독성에 득일 텐데, 전자랑 시너지가 생겨서 약이 독이 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별개로 화를 끊는 타이밍이 이상하거나 한 화의 (글자 수가 아닌 전개된 내용의)분량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제 생각에는 화별로 글을 구성하는 것보다는 권 단위로 글을 구성하는 데에 익숙하셔서 이런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실제로 일반문학까지 갈 것도 없이 옛날에 나온 판타지 소설만 꺼내들어도 5000자로 끊어보면 어색함이 느껴지니까요.
어쨌든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일관된 톤으로 쭉 쓰실 수 있다면 글이 훨씬 좋아질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해결법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저는 뭐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글쓰기 일타강사도 아니니 제 해결법이 정답이라고 단언하지 못합니다만, 그렇다고 두루뭉술하게 언급을 피해봐야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테죠. 게다가 저라도 제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금까지 쓴 리뷰가 허상이 될 터이니. 저는 두 가지 해결법이 생각납니다.
1.상술한 혼란스러움(적을 타이밍을 놓쳐서 여기 부연합니다. 리뷰 주제가 자꾸 바뀐 이유가 이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대혐수님의 리뷰 중 “실은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리뷰에 쓸 내용들이 떠올라 한바탕 적어 놓으면, 또 나중 내용 때문에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가 일쑤였습니다.”라는 게 제게 복선으로 작용했네요;;)이 실험적인 기법이 아니라 정말로 균형감각을 넘어선 의욕의 발로였다면, 그냥 더 쓰시다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니 열정과 탐구심을 계속 유지하시면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2.어떻게든 지금 이 작품을 고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 문제를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작품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통일하는 겁니다. 저한테는 작품을 그렇게 뜯어고칠 바에야 새 작품을 한 편 통째로 쓰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추천은 못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