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리뷰를 쓰기 전에 작품을 읽습니다(당연한가?) 작품을 읽으면서 A4용지에 하고 싶은 말을 간단히 요약합니다. 감상도 있고 힐난(?)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양쪽 다 없었습니다. 단숨에 후루룩 읽어내려갈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문장이 딱 제가 좋아하는 수준으로 짧았고, 그런 짧은 호흡이 빠르게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문체의 뉘앙스나 지향하는 바가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군요.
본 작품은 죽은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는 여성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정확히는, 묻어두고 싶을 정도로 쓰라린 기억을 회상하는 여성의 시선이죠. 그런데 후반에 들어갈 때까지 작중 화자의 성별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1인칭 시점에서 화자의 성별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을 뿐만아니라 제시하는 방식이 우아하다고 말하기 어렵죠. 대놓고 말해서 ‘알려줘야 하니까 알려준다’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든 방식들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도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죠.
물론 이호재라는 이름은 다분히 남성적이고 그 연인이니까 당연히 화자가 여자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보통 사람들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이 두 사람이 게이 커플일 가능성을 ‘누나’라는 표현이 나올 때까지 지우지 않았습니다. 작중 배경이 기숙사라는 점도 제 오해를 공고히 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제 상식 선에서 혼성 기숙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일단 제가 사는 기숙사는 남동 여동의 통제가 엄격합니다). 또한 법적인 부부라고 해도 같은 기숙사방을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만의) 상식 때문에 두 사람이 계속 게이 커플처럼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소설 자체는 쉽게 읽어내려갔는데도 어쩐지 제 머릿속 한 구석이 내용의 이해를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자꾸만 뇌가 ‘이건 게이 이야기야! 게이 이야기!!’라고 지껄여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게이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사랑으로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사랑을 그 자체로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계속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호모포비아가 아니라 단순한 호불호라고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여튼 그런 까닭에 제 감상은 묘하게 뒤틀려있습니다. 아마 선작 님께서 독자에게 원하는 반응 혹은 감상과는 제법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초반에 화자의 성별이 명시되기만 했더라도…. 하는 작은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래도 작품 자체는 특별히 모난 곳 없이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