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을 적기에 앞서, 작가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목과 몇 개의 키워드, 장면만으로 저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지도 몰라요.
카산드라는,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예언을 아무도 믿지않는 저주를 동시에 받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인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예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녀는 트로이 침략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결국 트로이와 그녀는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죠.
언젠가 카산드라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단편 목록에서 이 작품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을 동시에 안고 클릭했습니다. 제 구상과는 많이 달라 안심했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카산드라를 볼 수 있다는 점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 소설 속의 카산드라 역시 불행한 미래를 예언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예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죠. 그럼 소설의 분위기가 비극이어야 할 텐데, 그와는 반대로 밝고 경쾌합니다. 주인공의 무심함이 예정된 불행으로 운명을 밀어붙이는 비극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불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밑바탕이 됩니다.
이 이야기의 카산드라가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와 다른 점 하나는 스스로 노력한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지만, 그녀 자신은 자신의 말을 믿을 수 있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예언을 믿지않는 주변 사람들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담담하게 노력합니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복원력 때문에 미래가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을 하는 거죠.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산드라가 예언한, 그가 믿을 수 없는 불행한 미래와는 별개로, 그의 앞에는 에세이와 중간고사, 아르바이트, 그리고 최종 보스인 취업이 겹겹이 버티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하나하나의 고비는, 그걸 맞닥뜨린 개인에게는 세계의 멸망과 맞먹는 위기일 지도 모릅니다. 예정된 멸망처럼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질 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카산드라와 마찬가지로 꿋꿋하게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며, 넘어야 할 고비와 하나하나 맞닥뜨릴 거라는 희망을 이 글은 줍니다. 그 과정을 비극이 아닌 희망으로 채우는 건 시아노아크릴레이트가 함유된 순간접착제 처럼 달라붙는 사랑이겠죠. 카산드라가 주인공의 목숨을 구하고 또 그것으로 미래가 바뀌리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주인공이 갖고 있는 그 순수하고 씩씩한 사랑에 대한 희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