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프고 처절한 이야기다. 현대 한국의 큰 비극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재료로 사용된 감도 있지만, 그 희생자들의 아픔을 일부나마 느낄 수도 있었다. 인물을 고기 무게 달듯 묘사하며 시작해 찌르고 때리고 싸우는 도입부부터 만만치 않겠다 생각했는데도, 회마다 더 세고 으악 아이고 싶은 내용이 이어진다. 지아는 눈 앞에서 엄마를 잃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또 하나의 인격 혜수가 생겨나는데, 혜수는 지아와 달리 몹시 폭력적이고 지능이 높아 온갖 일들로 지아를 괴롭힌다. 결말에서야 감정과 이성을 서로 나눠 서로를 지킨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여전히 혜수는 왜 지아를 괴롭혔나 싶지만, 감정이 없는 인물로서 온전하게 몸을 지배하고 싶은 것, 또는 그 감정에 휩싸여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판단이었을까?) 결말 부분 두 인격의 화해는 찡하기도 하고, 더 나쁜 인물을 효과적으로 벌하는 카타르시스도 따르지만 이걸로 됐나 생각하면 지아가 잃은 게 너무 많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가, 딸을 잃고서야 다시 자신을 찾는다니… 그래도 감정이라곤 없던 혜수가 다시 지아를 불러낸 지점이 스며든 딸에 대한 사랑과 그 상실에 대한 감정을 어찌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는 게 너무 짠했다. 다은이는 왜 엄마 친구라고 문을 열어 줬을까 ㅠㅠ 묵진의 벌은 왜 문단속을 약하게 했을까 ㅠㅠ
장면 장면과 묵진 묘사는 무척 생생해 피곤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인물들도 하나 같이 정 가는 이가 없지만 그래도 뭐 하는 놈인지 구경은 해야겠다 생각이 든다. 진희도 딱하지만 서로의 가족을 잃고 가능한 상대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할 수 있나 싶다가도 아 그러면 안되지, 근데 그 나쁜 일을 시키기 위해 제 정신이 아니게 설계된 걸까 생각도 들고… 진희를 살려줄 사람은 아빠도 아니고 이제 없게 됐구나, 나쁜 일은 먼저 끊어야 그마나 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관훈이 혜수에게 당했을 때 먼저 과거사를 사과했더라면 어땠을까도 생각하게 되고… 그나마 마지막에 온전해진 지아는 희망일까 싶다가도 이젠 어떻게 지낼까 막막한 마음. 차마 잘 지내라고도 못하는데 스스로 가해자를 벌했으니 최악은 아닌 걸까…
너무 복잡하고 아픈 이야기인데, 처음 언급했듯 현대 한국의 그 큰 비극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겠지 생각을 했다. 그 인간을 벌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