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구속하지도 않고, 그저 한없이 착하고 나긋나긋해진 사람들. 사랑이라는 이름의 병, ‘오 사랑’에 걸린 사람들이다. 주변 사람들은 착해지다 못해 ‘호구’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낯설어하기도, 걱정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좋아한다.
하지만 ‘오 사랑’이 마냥 좋은 병이라면 탐정 사무소가 출동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마냥 착해진 사람들은 어느 날 운명의 상대를 찾아가 손을 잡고 아무 데나 누워서 일종의 코마 상태에 빠져 죽어가다가, 영문 모를 행동을 동시에 하고, 결국은 외계인의 메시지를 전하는 스피커가 되어 버린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탐정 사무소의 김솜과 ‘오 사랑’에 걸렸다가 갑자기 깨어난 화신을 비롯하여 ‘오 사랑’에 걸리지 않은 몇몇 사람들은 인류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외계인은 그들에게 묻는다. “서로 사랑하는 게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왜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까?”
‘오 사랑’ 사태의 ‘생존자’인 주인공들도 스스로를 향해 자문한다. “나는 왜 ‘오 사랑’에 걸리지 않을까?”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차가운 인간이라서, ‘버그’라서, 외계인의 말대로 ‘불량’이라서…. 자조적인 답을 해 보지만, 작중에서 그들이 ‘오 사랑’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오 사랑’이 인류를 감염시키는 외계인의 수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좀비 아포칼립스 물에 등장하는 ‘면역자’에 해당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외계인의 입장에서야 화나고 짜증났겠지만, 지구인들의 입장에서는 지구 최후의 ‘용사’들이었다.
외계인이 만들어낸 형태의 사랑은 아니라 해도, ‘불량’들의 인류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 또한 사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빚어낸 또 다른 사랑이 세계를 구했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추천셀렉션’의 ‘신체강탈자 공모전 역대 수상작 모음’ 탭을 보고 ‘오 사랑’의 원인이 바이러스나 판타지스러운 요소가 아닌 ‘신체강탈자’의 짓일 것이라고 짐작해버린 점이다. 모르고 봤더라면 외계인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더 깜짝 놀라 줄 자신이 있었는데! 하지만 ‘오 사랑’은 신체강탈자 공모전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만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