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 요괴담을 이어가는 발과 입의 힘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척안재담(隻眼才談) (작가: neptunuse,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4월, 조회 86

글이 없던 시절, 신화, 전설, 민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 사람에게서 일어난 일이 저 사람에게로, 이 집에서 벌어진 일이 저 집으로, 이 마을에서 생긴 일이 저 마을로 옮겨가는 데에는 몇 개의 입이면 충분했다. 문자와 기록의 발명 후, 이야기는 정돈, 가공된 상태로 좀 더 긴 역사와 생명을 얻었지만, 그만큼 구전되는 양은 줄었다.

지금은 동네마다 이야기를 팔러 다니는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통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이 마을과 저 마을의 왕래가 적었던 시절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 재미난 이야기를 수집하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돗자리 하나 딱 피고 길가에서 범상찮은 목소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쪼르르 달려오는 어린아이와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 어른들, 호기심 어린 얼굴의 아낙들. 낯선 이야기와 외지인 한 명이 불러 모았을 마을 사람들의 무리를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나고 마음이 따듯해진다.

옛이야기가 주는 정은 남다르다. 오직 청자를 위해 화자가 주의 깊게 듣고, 기억하고, 분위기에 맞게 가공한 내용이 입에서 입으로 정성스럽게 전해진다. 겹겹이 입김을 타고 흐르기에 ‘구전 동화’는 여전히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다.

여기 외눈박이라는 이름의 한 이야기꾼이 있다. 단순히 눈이 한쪽뿐이라 ‘외눈박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박가(家)의 외눈이라는 뜻의 ‘외눈 박’이다. 자기소개부터 범상치 않은 이 사람의 전공은 ‘요괴’ 이야기다. 이 마을에서 하나, 저 마을에서 하나 소중히 모은 듯 신비한 사건을 풀어놓는데, 금세 사람들의 눈과 귀를 홀린다. 청자들은 죄 없는 이에게 피해를 주는 요괴의 등장에 분노하고, 그것을 처치하는 사냥꾼의 활약에 환호하며, 교훈에 탄복한다. 요괴처럼 타인을 속이고 괴롭히던 이들은 ‘내 얘기구먼’ 중얼거리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이야기를 즐겁게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만연하다.

이 외눈 박가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사람을 홀리는 즐거움은 이야기꾼인 그가 갈고닦아야 하는 능력이라지만, 마치 직접 겪은 듯한 생생함에는 어딘지 묘한 설득력이 있다. 순식간에 고조되고 끝나는 열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외눈 박가의 경험이 조금씩 서린 듯하다. 하지만 그가 소개하는 요괴들은 살면서 한두 번 만날까 싶은 무시무시한 생물인 데다, 이미 오래전 저 유명한 요괴 사냥꾼 서리태가 전멸한 것들이 아닌가. 세상 물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제 한 몸 건사할 식량과 두 발로 떠돌아다닐 체력만 있다면 영원히 이야기만을 풀어놓을 듯한 이 신비로운 사내. 도대체 ‘박 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몸과 마음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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