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긍정하기 위한 여로 : 괴수를 위한 시간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괴수를 위한 시간 (작가: ON, 작품정보)
리뷰어: 가온뉘, 23년 4월, 조회 40

* 스포일러가 될만한 내용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겉멋 들어서 헌사를 바치고 싶었던 욕심을 접었다. 어차피 늘 쓰고 싶은 걸 쓰는 사람이었기에, 좋아하는 글을 좋아하기만 해도 바쁘기에, 그냥 있는 힘껏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좋아하는지나 떠들어보려고 한다.

 

장장 4년 2개월을 달려온 <괴수를 위한 시간>에 마침표가 찍혔다.여기에 있는 <벽 너머의 삶>을 비롯하여 ON 작가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읽어온 독자로서 챕터를 거듭하며 만화경처럼 모습을 바꿔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긴 여정의 끝이 무엇일지를 기대하며 마지막을 달렸다.

좋은 의미에서의 충격이었다.

다시 볼 때마다 모습을 바꾸던 길의 풍경도, 음각과 양각의 역전으로 다채롭게 만화경을 펼쳐내던 이야기는 자기는 단 한 번도 모습을 감춘 적이 없었다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 긴 여정, 이윤의 미로와도 같았던 색색의 나열 끝에 나타난 이름은 제목 그대로 ‘괴수를 위한 시간’이다. 작중에 나왔던 이현/리현의 사소하고도 즐거운 트릭처럼, 나는 이야기의 끝을 본 지금에서야 이 글의 제목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아주 초창기에, 이 글의 제목을 두고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더랬다.

괴수. 보통과 달리 괴이하고 이상한 짐승을 뜻하는 말. 부정형의, 명명되지 못하는, 보통 또는 평범을 벗어난 모든 존재. 바로 그를 위한 시간. 그렇다면 괴수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막이 오르고, 인물들이 등장하며 진행된 첫 챕터는 식인조 편이다. 그래서 멋지게 속았더라고,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문자 그대로 ‘괴물’이라고 부를 존재가 나왔으니까. 게다가 리현을 비롯해 아이샤나 신록 등 ‘보통’의 범주를 넘어가는 듯한 이들도 꽤 나오지 않았는가.

오로지 문자가 조형하는 환상의 세계는 마이크를 번갈아 쥐어간다. 그 누구도 주류에 있지 않은, 경계에 선 자들의 이야기다. 비록 아주 초반에 리현 본인이 “끝없는 세계의 ‘인간’”이라며 자신을 ‘인간’으로 지칭했다지만 독자,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우리 인류가 볼 때 그를 비롯한 여러 인물은 우리의 ‘인간’은 아닐 거다.

그래서 서아는 우리의 대표자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더니, 웬걸. 서아는 무모하고 용감하게 경계를 건너 발을 걸쳤다. 모든 이야기를 걸쳐 돌아보면, 신서아 그는 리현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고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경찰 지망의 평범한 대학생은 단순히 평범한 것은 아니었겠지. 시혜도 아니고 그저 내 곁의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고자 발버둥 치는 생동이 서아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유진 역시 서아에게 반할 수밖엔 없을 것이고.

이 이야기를 각 파트 별로 떠들다간 밑도 끝도 없을 거고, 그것은 미래의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배턴을 넘긴다.

 

‘괴수를 위한 시간’이 앞서 여러 등장 인물에게 번갈아 마이크를 쥐여 준다고 서술한 바 있다. 혹자는 이런 전개 방식이 느리거나, 일관된 흐름을 못 느끼겠다고 불평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모든 인물이 판면 너머에서 삶을 투쟁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보고 들었다. 그들은 단순히 활자와 잉크로 구성된 종이 인형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 스포트라이트에서 비켜나 비주류로 사는 삶의 은유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것이 인간 찬가가 아니고 뭐겠나.

게다가 이 세계관, 그렇게 많은 이를 옮겨 다니면서도 촘촘히 잘 이어져 있다. 때때로 작가의 말에 어느 편을 참고해서 보시면 좋다는 말, 절대 흘려듣지 말기를 바란다. 사실 정말로 이 글이 만화경 같다고 느끼는 부분이 ‘앎에 의해 거기 문장은 그대로 있는데 보이는 것이 바뀌는 것’이니까. 이현/리현의 말장난과도 같이 말이다.

 

결국 횡설수설해졌지만, 나는 이 긴 여정, 판면에서 채 다루지 않거나 몇 자에 적혀 지나갔을 리현의 지독한 고독이 사실은 긴 여정으로 그 자신을 긍정하기 위한 시간이었음에 깊은 안도를 느낀다. 그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내가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라는 점을 밝히는 수밖엔 없는데(어차피 온라인에선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혹여 나를 오프라인에서 아는 사람이 있다면 슬쩍 눈 감고 지나가 주길 바라는 바다.), 바로 그 소수성 때문에 리현의 자기 긍정이 아주 크게 다가왔을 거다. 많은 사람들의, 각자 이야기를 이끄는 삶들의 겹침 속에서 그들을 힘입어 나 역시 그러한 안정과 희망, 애정을 느낀 이로써 더더욱.

그러니, 그대, 당신의 여로를 꿋꿋이 투쟁해 나가시길 바란다. 그 모든 발자국은 언젠가 당신을 긍정할 기반이 될 거다. 그 걸음의 곁에 ‘괴수를 위한 시간’이 한몫 거들 수 있다면 애독자인 나로서는 더더욱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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