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뤼에보다 더 무서운 공간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증명된 사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달바라기, 17년 6월, 조회 768

생명체가 살 만한 외계행성을 찾는 천문학자의 노력이 이런 식일까 싶었다.

네, 접니다.

전 대학원 때 외계행성관측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직접 발견한 외계행성은 없고, 결국에는 좀 특이한 갈색왜성(그런게 있어요)과 원시행성계원반(또 그런게 있어요)에 대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어요. 천문학자가 외계행성을 찾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뭐, 결론적으로 말하면 ‘증명된 사실’의 이남민 박사의 말이 맞습니다. 몇 가지 힌트는 있겠지만 결국은 복권 뽑는 심정으로 관측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죠. 행성이 있을 것 같은 곳에 아무것도 없거나, 설마 행성이 있을까 싶던 곳에서 행성이 발견되고는 하거든요.

저는 사실 이산화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글 쓸 의지를 반 쯤 잃고 말아요.’아마존 몰리’를 읽고 ‘아, 작가님이 대학원을 나오셨구나’하면서 동질감을 느꼈고, 몇몇 다른 작품에서도 아카데미아의 향기가 흘러내려서 내심 반갑고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빼어난 글솜씨 속에 기상천외한 발상을 담아내는 것을 볼 때마다 경험의 껍데기가 비슷하다고 함부로 비교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져요.

전 글쓰기 시작한지 겨우 두 달 남짓이 지난 애송이입니다. 그리고 항상 SF를 쓰고 싶은데 자꾸 호러가 먼저 튀어나와 고민 중인 이공계이기도 해요. 그런 제게 이산화 작가님의 작품은 일종의 이상형에 가까워요. 나도 이런 작품 쓰고 싶다! 하지만 이상은 도달할 수 없기에 이상인거죠. 아마 전 이런 작품 못 쓸겁니다. 그래서 글 쓸 의지를 반 쯤 잃어요.

그리고 다행히 남은 절반의 의지는 작가님의 작품에서 배울 점을 찾기 위해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절 절망시키면서 많이 배울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려요.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서,

‘증명된 사실’은 제가 지금껏 브릿G에서 읽은 모든 작품 중 가장 오싹한 결말을 가진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연구한다며 귀신 보는 소녀가 등장했을 때까진 평범했어요. 이런 이야기가 어디 한둘인가요?  작가님의 매끄러운 문장력에 이끌리긴 했지만,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렇게 친숙한 소재로 시작해서 어마어마한 우주적 공포에 이르고 독자의 뺨을 후려치기까지의 과정은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진행돼요.

그리고 소재와 발상도 뛰어나지만 그 효과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건 연주라는 귀신 보는 소녀의 존재입니다. 처음엔 가벼운 유머처럼 할머니 이야기를 하지만, 마지막에 다시 할머니를 떠올리는 연주의 심정은 아마 독자의 상상으로는 그려낼 수 없을 겁니다. 아니, 사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이 작품의 결말이 제게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어린 시절 꿨던 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그 악몽보다 더 무서워요. 부디 오늘밤 꿈에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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