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뷰 의뢰를 받고 처음엔 고민이 많았습니다. 시간은 둘째치고, 과연 개그물에 제가 제대로 된 리뷰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도 모험님 글을 모두 다 읽어 보았으니 적절한 리뷰를 쓸 수 있을 거예요. (아마)
이 작품은 웃기만 할 수 있는 개그물일까, 아니면 어떤 사회의 일면을 비틀어서 쓴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일까 얼굴을 찡그리며 갸우뚱 해봤지만 양쪽의 측면이 다 있네요. 처음 일독은 웃기만 했습니다. 영도의 성격이 그렇게 변할 줄이야!
주인공의 이름이 ‘영도’ 였을 때부터 감농사를 지으시는 과수원의 그 분이 생각나서 과연, 이런 성격이시군. 하며 말도 안되는 이입을 해보았습니다.(비밀입니다.)
2-1.
웃기만 했을 때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침착하고, 얌전하지만 책에서 본 저승이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성준의 표현에 의하면 ‘개또라이’ 같은 성격의 영도와 23년 짧은 인생을 부모 말 안듣고 놀거 다놀고 반항하며 지냈지만 마지막엔 노숙자 대신 얼어죽음으로써 어쨌거나 남의 생명을 구한 성준이 저승을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헤프닝입니다.
저승에서 천국이나 지옥이냐의 판결에서도 어이없음이 곳곳에 묻어나는데 이들이 갈라지며 가게 되는 천국의 모습과 지옥의 모습이 가관입니다.
물론 천국은 좋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고, 모두가 건강한 생활을 하며, 모두가 짧은 노동시간과 긴 휴식시간을 갖게 됩니다. 살 집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현세에 있을 때를 고려해서 먹을 것도 마련해주는 배려심 깊은 모습도 볼 수 있죠.
반대로 무간지옥이나 아비지옥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지옥은, 아주 삐- 해서 삐삑- 하고 삐이이이익-한 모습이라고 하는데요.
범생이 같은 영도와 노는 무리같던 성준의 지옥와 천국의 적응기에 웃음이 터집니다.
2-2.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천국의 모습과 지옥의 모습이 생각과는 다르지만 또 아주 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농담삼아 이야기 하곤 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너 ~ 하면 지옥같다.” 류의 천국과 지옥입니다.
종교가 들어가면 리뷰를 진행하기 어려워집니다만 검색창에 짧은 시간만 검색을 해도 기독교적 윤리관과 청소년기의 터저나갈 듯한 에너지가 충돌하는 질문글이 수 없이 올라오곤 합니다.
“락 음악을 들으면 지옥에 가는건가요?” 라던지 “자위를 하면 지옥에 가는 건가요?” 같은 류의 질문인데요. 리뷰에 아주 조금 참고를 하려고 페이지를 쭉쭉 넘기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진다던지, 당연히 성적인 관심이 자라나는 시기에 그것을 억누르려는 노력을 한다던지. 이들에게 종교가 어떤 것만이 바른 것이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래서, 이 주인공 친구들이 도착한 천국과 지옥은 이런 기독교적인 윤리관에 비틀기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성과의 접촉은 손을 제외하고는 금지예요! 이곳 천국에서는 매일 아침 성욕을 억제하는 수증가가 함께하니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겁니다. 호호. 성욕으로 인해 발생되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랍니다~ 여성 여러분! 안심되시죠? 호호호.”
이건 화학적 거세…. 아닙니까.
그야말로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격이군요.
게다가 유일하게 허락된 도서인 성경책을 읽거나, 유일하게 허락된 도박인
가위바위보
그에 반해 지옥은 어떤가요?
인터넷에 떠돌았던 짧은 댓글이 생각났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락음악을 들으면 다 지옥에 간다고 했는데 그거 완전 꿀 아니냐? 생각해봐, 지옥가면 매일 매일 좋아하는 뮤지션들이랑 락페가 열리는거야.” 라고 기억합니다. 락페! 매일 매일! 그런 지옥이라면 가볼 만 하지 않을까 했는데 여기에서 실현이 되네요.
영도는 편지로 짐작해 볼 수 있는 지옥이 그렇습니다. 매일 클럽에 매일 눈만 마주치면 (이하 생략).
작가님께서는 웃고 넘기라는 개그물로 장르를 정했겠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이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과 맞물리자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3.
종교라는 말이 나온 김에 더 적어보자면, 분명 천국과 지옥은 기독교적인 느낌이 폴폴 납니다만 성준과 영도가 죽고 난 후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가기 전까지는 불교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염라대왕의 심판이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요. 아니 불교라기보단 민간적인 사후관이 강하네요. 저승에 도깨비라니 신선하기도 하고요. 도깨비는 이승에 관할 구역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일생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인건가요? 그러면서 종종 저승에 내려가 보고를 하기도 하고요?
두 가지의 종교관이 섞인 상태로 전개가 되고 있는데도 어색하지 않아서 신기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 살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니 한국인이라고 자꾸 혼나기만 하는 우리 주인공들도 기 좀 폈으면 좋겠네요.
작가님의 작품 중
<손가락의 남은 시간> 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도 전 주인공들보다 서브 캐릭들에게 더 매력을 느낍니다. 염라대왕의 덩치와는 다른 행동도 그렇고 참파 어르신도 그렇고. 어찌보면 악역으로 볼 수 도 있는 에스더 선생님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네요. 웃는 얼굴로 무서운 얘길 쏟아내다니..
4.
웃기도 했다가 한국인 임을 반성도 했다가 과연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했습니다. 즐겁게 읽었지만 덧붙이자면 딱히 스포라고 표기할 것도 없이 제목이 다 알려주고 있어서 반전이 약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딱히 반전을 노리고 쓰신 것 같지는 않지만 조금은 뻔한 전개라 앞서 언급했던 짧은 댓글의 내용을 소설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약하면 결국 지옥은 삐- 하고 천국은 지루하다. 정도일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흔한 재료로 요리를 하셨으니 뭔가 더 색다르고 강렬한 느낌이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결국 악역이 더 빛나는 것으로 상쇄되긴 했지만요. 뭔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싶달까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시는 모습은 무척 보기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도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