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창공의 등대 (작가: 박꼼삐, 작품정보)
리뷰어: cedrus, 22년 10월, 조회 198

먼 우주에서 안부를 물어오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놀라운 기적에 즐거워하며 다정한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도 있을 테고,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며 답장을 보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고 싶어 길을 떠날지도 몰라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에르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박꼼삐 작가님의 <창공의 등대>를 읽었어요. 읽으면서 정말 좋았던 글이라, 단문응원 하나에 감상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 감상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주에 관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 글도 분명 좋아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글을 읽으면서는 마냥 좋다고 생각했고, 다 읽은 후에는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언어와 꿈이에요. 에르벤은 우주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빠져들었고, 그 목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먼 길을 떠났고, 여행과 귀환 과정이 마치 꿈처럼 그려지지요. 각각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이어지는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겠습니다!

 

1. 낯선 언어를 배우는 이야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 중에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있어요.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지요. 소설에는 학교 교사이자 고전문헌학자인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어느날 포르투갈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리고, 이 언어에 매혹되었어요. 그 순간부터 그레고리우스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고요. 일상으로부터 숨은 채 어학 CD를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포르투갈어를 공부하고, 고서점에서 발견한 책의 저자를 찾아 리스본으로 떠납니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이었고 책의 저자를 찾는 여행은 그레고리우스를 생각해본 적 없는 삶으로 이끌어요.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낯선 세상으로 떠나는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기대를 느껴요.

<창공의 등대>를 읽으면서도 그랬어요. 어느날 에르벤은 우주 어딘가에서 전해져오는 주파수를 수신해요.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유의미해 보이는 신호였고, 놀랍게도 그건 누군가의 목소리였죠. ‘신비로운 음악과 잔잔한 목소리’에 매료된 에르벤은 오로지 이 목소리의 의미를 해독하는 데 일상을 바칩니다. 카세트에 녹음한 소리를 몇 번이고 돌려 듣고, 자주 들리는 단어들을 기록하고, 어려운 발음을 어설프게 흉내내어 보기도 했어요. 수 개월에 한 번 도착하는 새로운 신호를 기록하며, 어느새 수 년의 시간이 흘러버려요. 지구의 어느 인간도 더 이상 에르벤을 찾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요.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들어 열정을 바치는 인물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매혹적이에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대상을 향해 온 신경과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다는 건, 정말이지 멋지지 않나요.

에르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요. 다정한 목소리가 우주의 다른 생명체를 향해 안부를 묻는다는 걸 알았고, 어디로 가면 목소리의 주인을 만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우주를 뛰어넘는다는 건 여간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 테니 정말로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래도 에르벤은 떠납니다.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데니즈를 만나기 위해서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일이죠. 새로운 책을 펼칠 때처럼 낯선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주는 것만 같으니까요. <창공의 등대>는 낯선 언어를 배우는 이야기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2. 꿈에 관한 이야기

2-1. 꿈에서 깨어나다

작중에서 에르벤은 두 번의 꿈을 꾸었어요. 첫 번째 꿈에서는 수조 속에서 평생을 살다가 해삼에 짓눌려 생을 마감하죠. 사랑하는 데니즈를 만나기 위해 우주를 뛰어넘었는데, 데니즈는 말도 통하지 않는 해삼이에요.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아마 처음의 꿈은 이러한 충격과 앞으로에 대한 불안이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에르벤은, 곧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요. 에르벤이 사랑했던, 오백만 광년 떨어진 행성을 찾아올 만큼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존재가 여기 있는 걸요! 외양이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중요한 건 에르벤이 데니즈를 만났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데니즈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연습했던 언어가 있어요. 서툴지만 진지하게, 에르벤과 데니즈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눠요. 에르벤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아요.

두 번째 꿈에서, 에르벤은 데니즈와 행복한 피크닉을 즐겨요. 그러나 이내 비참한 현실을 깨닫죠. 에르벤은 물 속에서, 데니즈는 땅 위에서 살 수 없어요. 에르벤은 우주를 건너기 위해 긴 시간 잠들어야 했지만, 데니즈는 수명이 다해 자연사하는 일이 없어요. 어떠한 형태일지 아직은 모르지만, 작별은 이미 분명한 미래인 셈이에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만나러 오지도 았았을 텐데, 하고 에르벤은 후회해요. 그렇게 울면서 눈을 떴을 때, 에르벤은 돌아와 있어요. 자신의 집으로.

데니즈를 만났던 게 마치 꿈만 같아요. 정말로 이 모든 게 꿈이었을까요?

 

2-2. 꿈의 중의적 의미

에르벤이 실제로 작중에서 꿈을 꾸지만, 에르벤의 여정 자체도 꿈이라는 비유에 들어맞는단 생각이 들었어요. 꿈은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정신 현상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니까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어쩌면, 간단한 인사를 따라하기조차 어려운 생소한 언어를 사용하는 먼 우주의 이 다정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곳으로, 그를 만나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겁이 많은 저는, 에르벤의 결심을 보면서 당황했어요. 대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일 줄 알고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곳에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언어로 신호를 보낸다면, 목소리의 주인은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존재일 게 뻔하지 않나요. 이미 사랑에 빠진 에르벤에게 그런 건 사소한 문제였는데… 중요한 사실을 착각했다는 건 분명하죠. 먼 우주의 다정한 ‘사람’은 에르벤이 상상한 모습이 아닐 테니까요.

낯선 행성을 정말로(!) 찾아왔는데, 에르벤이 걱정했던 건 그런 문제였어요. 내가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닐까. 우주를 가로지르느라 긴 시간이 지나버려서 데니즈도, 데니즈를 기억하는 사람도 남지 않았으면 어쩌나. 에르벤은 낯선 행성에 도착했단 걸 알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을 찾아요. 물 위의 땅덩이들,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확신이 뒤집히는 순간이 어찌나 짜릿하던지요. 에르벤이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황급히 몸을 일으킨 에르벤은 푸른 시야를 한참이나 더듬다가 우주선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친 채 물 속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그러니까, 찾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에르벤이 찾아야 했던 것은 땅 위가 아니라 수면 아래였고, 사람이 아니라 해삼을 닮은 생명체였어요. 그가 보고 있던 것은 수면의 반짝임이 아니라 수중 생물의 비늘들이었고요. 에르벤이 꿈꿔왔던 만남은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에르벤의 상상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 것을 에르벤은 오래도록 후회했다. 물기가 마른 뒤에도 계속 바다 냄새가 나는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데니즈를 그리워했다.

저는 사실 이 문장이 무척 낭만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바다 냄새가 나는 노트하며 해석할 수 없는 언어라니요. 에르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단어들이 주는 울림이 참 아름다웠거든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여기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단 걸 알 수 있죠. 에르벤은 우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언어를 익혔어요. 자주 나오는 단어를 적고 발음을 연습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의 언어로 적은 것이에요. 에르벤은 데니즈의 언어가 어떤 형태를 가지는지 알지 못해요. 데니즈와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었지만, 그 소통은 즉각적이고 현시적이었죠. 에르벤은 데니즈가 남긴 문자를 이해할 수 없어요. 안타깝게도 에르벤의 해석,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었어요. 에르벤이 꿈꿔왔던 만남은 주관적인 환상에 기반한 것이고, 에르벤의 실제 여정은 꿈/환상에서 깨어나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그게 아름답지 않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요.

 

2-3.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

에르벤의 여정이 마무리될 때, 저는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아름다운 게 하나 더 남아 있었던 거 있죠.

저 창공에는 바다가 가득하다오. 그리고 바다는 사실 창공과 다를 것이 없지. 바다에는 우주가 있고, 우주는 다시 바다라오. 내게는 그래. 저 어딘가는 새파란 바닷물이어서, 그 아래엔 나의 다정한 데니즈가 살고 있겠지. 나는 그가 베푼 다정을 내팽겨칠 수는 없었소. 그래서 내가 이곳에 머무는 거지.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가 가까이 있는 것 같은 곳에.

그래서 제목이 ‘창공의 등대’였어요. 바다는 우주이고 우주는 바다니까요. 창공이 곧 바다라서, 그곳에 데니즈가 있을 거라서 에르벤은 제목이기도 한 ‘창공의 등대’에 머물러요. 바다에 잠긴 우주를 바라보면서.

에르벤은 오랫동안 바닷가에서 살았다고 해요. 그는 곧 우주로 떠날 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우주로 떠날 그 사람은 다시 누군가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이야기를 남겨요.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 이어지겠죠. 한때 데니즈의 다정한 목소리가 우주로 전해졌듯 말이에요. 에르벤이 좌절한 채 끝나지 않아서, 여전히 우주를 바라보며 꿈을 꾸는 사람이어서 저는 기뻤어요. 해석할 수 없는 메시지와 작별 선물을 바라보며, 에르벤은 우주 너머의 삶을 언제나 상상하지 않았을까요. 에르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보며 꿈을 꾸고, 또 누군가는 우주를 향해 떠나겠죠. 글에 담긴 부분과 담기지 않은 부분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데니즈가 어떻게 에르벤을 집으로 돌려보냈을까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해요. ‘지루할 이야기를 모두 생략한 뒤 남은 것’은 에르벤이 우주를 향해 떠났다는 사실이었듯, 여기서 중요한 건 데니즈가 에르벤을 위해 그렇게 했으리란 사실이에요. 에르벤의 온 얼굴이 축축했다거나 노트 한쪽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거나 정체를 짐작도 할 수 없는 물건이 있었다는 건 모두 ‘부수적인 것들’일 테죠. 에르벤이 데니즈의 곁에 남더라도, 에르벤은 수조 안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겠죠. 자신을 만나기 위해 우주를 건너온 사람이 어찌 반갑고 고맙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에르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지구의 집일 테니까요. 데니즈는 데니즈 나름의 작별 인사를 남기고 에르벤을 떠났어요. 데니즈가 남긴 것이 혹시, 자신을 닮은 ‘인형’ 내지는 ‘모형’ 같은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아니면 아끼는 물건이었을 수도 있고요. 무엇이건 에르벤이 데니즈를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랐겠지요.

데니즈는 에르벤을 위해 작별을 결심했고, 에르벤도 사무치게 슬프지만 결국 후회하진 않았을 거에요. 처음에 바랐던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을 만났으니까요. 낭만과 다정함으로 가득한 멋진 이야기였어요.

 

*사족 : 물 속의 수조, 수조라기엔 물이 들지 않은 상자이긴 한데, 아무튼 수조 안에서 깨어난 에르벤은 데니즈를 만났어요. 혹시 <심해의 지족관>을 읽어보셨나요? 물 속에 세워진 문명과 투명한 상자 안에 든 작은 생명이란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상이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는지, 개인적으론 읽으면서 무척 재밌었던 요소였어요. 잔혹한 묘사가 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이니 관심이 가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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