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교실 창문으로 등껍질이 반짝거리는 풍뎅이가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곤충을 좋아하던 저와 제 친구는 그 풍뎅이를 투명한 필통에 넣어 관찰하기로 했죠. 한 번은 수박을 먹다가 작은 조각 하나를 필통 안에 넣어줬는데 잠시 뒤에 보니 풍뎅이가 그걸 먹고 있더군요. 한여름 밤, 풍뎅이와 함께 앉아 수박을 먹는 기분은 참 신선했죠. 풍뎅이와의 동질감도 조금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그 풍뎅이는 예쁘기로 유명한 비단풍뎅이더군요. 그래서 가끔 비단풍뎅이를 보면 함께 수박을 나눴던 풍뎅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 작품 속 주인공과 친구 사이에도 풍뎅이가 내려 앉습니다. 하지만 반짝이는 비단빛 대신 칙칙한 검은색과 주황색을 입은 송장벌레입니다. 그리고 비단풍뎅이가 정말 비단처럼 예쁜 벌레라면 송장벌레는 이름대로 송장을 먹고 사는 벌레죠.
시체를 먹고 사는 벌레라고 하면 대개는 혐오감을 느끼거나 좀 그로테스크한 호기심을 느낄 뿐이지만, 어째서인지 화자의 친구는 송장벌레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껴요.
친구가 송장벌레에게 느낀 동질감의 배경에는 그가 처한 상황이 있습니다.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성공을 기대하는 아버지와 실패로 점철된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 이 둘의 관계가 그 친구에겐 송장벌레의 삶과 묘하게 겹쳐보인 겁니다.
사교와 취미를 완전히 포기하고 고시 등을 준비하기 위해 삶의 긴 시간을 통째로 고독과 막연한 기대감에 투자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우리 주변을 장식하기 시작한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줄어들 조짐은 커녕,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지요.
제 다른 지인들 중에도 벌써 몇 년 째 수험생 신분인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크게 성공해 삶을 즐기고 있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일부는 현실과 적절히 타협한 성취를 이루고 욕심 없이 살고 있어요. 하지만 훨씬 많은 일부는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해 지내고 있지요.
듣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간이 지날 수록 이들과 부모의 관계는 서로에게 절실하면서도 다루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기대와 희망, 현실과 절망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고 합니다. 화자의 친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나’는 진심 어린 걱정과 좁힐 수 없는(혹은 좁히고 싶지 않은) 거리감이 담긴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거기에서는 축축하고 찝찝한 현실감이 느껴져요. 벌레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나’의 서술에서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 친구가 송장벌레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애절한 비명이 짧고 진하게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읽고 다시 읽었을 때, 작가분의 의도와는 조금 다를 수 있는 곳에서 송장벌레와 시체의 관계가 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송장벌레가 시체를 먹는 것은 살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이 운명이고 그것이 그들의 방법대로 힘차게 살아가는 방법이지요. 그래서 희망과 현실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시들어가는 친구의 모습은 송장벌레보다 시체에 더 가깝게 다가왔어요.
그렇다면 송장벌레는 누구일까요?
화자인 ‘나’는 왜 모든 인연을 끊은 그 친구 주변을 끝까지 맴도는 걸까요? 친구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먼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나’는 왜 친구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베풀고 있는 걸까요? 저는 ‘나’의 선의를 의심하는게 아니에요.
하지만 송장벌레들도 딱히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죠. 그저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할 뿐.
‘나’는 가망 없어 보이는 친구의 운명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해집니다. 위에서 얘기 한 것처럼, 제겐 공시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어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좋은 소식은 없어요. 오랜 친구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가끔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그 친구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며 안심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평소엔 아슬아슬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더 낮은 곳을 헤매는 사람을 보면서 마음의 진정을 얻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절망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희망과 안심을 빨아먹는 송장벌레들은 의외로 우리와 가까이 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