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조 작가의 짧은 판타지는 내가 브릿지에서 두번째로 읽은 글이다. 읽은건 두번째인데 마음에 드는 글을 뽑자면 늘 첫순위에 올라갈 글중 하나가 될것이다.
처음으로 읽은 글의 임팩트가 너무나도 강렬하였기에 조금은 멍해진 상태로 접했었는데 특히나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깐 ‘짧은’ 글인데 ‘판타지’라니 사양할 이유가 없잖은가?
참으로 놀랍게도 23페이지 분량 (나는 아직까지도 브릿지의 글 매수가 무엇을 기준으로 카운팅 되는지 잘 모르겠다..)의 글에서 10편의 그야말로 원래 그런듯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뒷받침해주는 거대한 세계의 청사진까지 펼쳐 보여주는데 처음엔 솔직히 좀 얼떨떨한 기분도 들었었다.
이 이야기들엔 작가가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어떤 기교도 트릭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그런게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잘쓰여졌다. 어찌보면 정말로 다른 세상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겨 놓은게 아닐까 싶은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런데 원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이야기라는게 그렇지 않은가? 듣다보면 딱히 기승전결이 있는것도 아니고 뚜렷한 캐릭터가 있는것도, 주제나 교훈이 있는것도 아닌데 그 느슨함을 즐기다 아쉬움을 가지고 돌아서면 강렬한 여운이 계속 머리속에 남아있는 그런것 말이다.
짧은 판타지의 이야기들이 그랬다. 시종일관 ‘그래서 뭐?’, ‘이게 끝?’ ,’뭐 어쩌라고?’ 같은 감상을 가지고 읽어나가다 다 읽고 나면 매 코스마다 딱 사람 입맛 아쉬울 정도의 분량만 내어놓는 프랑스 요리집의 정식을 즐긴거 같은 묘한 포만감이 든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좋았다. 굉장히 공들여 선정한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을 머리속에서 굴리며 읽어나가는 운율도 더할나위 없이 부드럽고 보여줄것과 보여줄 필요 없는것의 적절한 분류로 거대한 세계의 일부만을 가지고 독자가 적극적으로 세계를 재구축하게 유도하는 솜씨도 절묘하다.
아마도 작가의 머릿속에 그려진 세계보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재창작된 세계가 훨씬더 멋질 가능성이 큰 그런 매력이 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