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은 논한다.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천둥벌거숭이 (작가: 탁문배, 작품정보)
리뷰어: 휴락, 6월 27일, 조회 21

본인은 유행에 어두운 편입니다. 요즘은 뭘 보는지, 뭘 듣는지, 뭘 말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느려서 그런지, 아니면 엇갈려버린 건지를 알 수가 없으니, 그냥 허구한 날 고전 작품들이나 뒤적거리곤 합니다. 따라서 요즈음의 작풍들이 어떤지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헛읽지는 않았으니 어떠한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본작은 여러모로 독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우선, 첫 장에서부터 가공의 실록의 기록이 인용됩니다. 또한 미래 시점의 학자나 학계의 의견, 학설 등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꼭 사마천의 ‘사기’처럼 기전체 방식으로 쓰여진 역사책 같다는 것이 첫인상이었습니다. 아마 정사는 아니겠지만요.

둘째로, 허구이되 아주 현실과 괴리된 허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본래의 것을 약간씩 비틀었지만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영상도나 청라도 같은 지명,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인 상제교, 대사감을 수장으로 둔 감찰기구 사감부, 봉의대부라는 품계, 어떻게 보아도 조선이 떠오르는 나라와 그 양옆에 자리했다는 대국과 열도, ‘에도’가와 막부 등등. 은근히 기시감을 불러일으켜서 본래 이름이 겹쳐 보이는 통에 어지럽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것은 이름들일 뿐, 세세한 풍경이나 분위기는 익숙한 공간을, 그것도 상당히 폭넓게 그리고 있으니 이번에는 보르헤스나 에코의 박학다식하고도 그럴듯한 허구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조선왕조실록의 데이터베이스화가 완료되어 접근성이 늘고, 승정원일기 등 미번역된 사료들 역시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가는 터라 고증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사극 작가들이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록에 집착한 조상의 방식이 풍부한 사료라는 선물과 함께 창작자의 운신의 폭을 제한시키는 칼을 씌운 셈입니다.

그 때문에 요즈음에는 조선이라는 공간적 배경만을 남기고 가공의 임금의 치세를 설정하는 꼼수를 쓰기도 합니다. 사실 ‘해를 품은 달’ 시절에 이미 선보여 널리 알려진 방식이니 딱히 신기술이라 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근래 자주 쓰인다는 점에서는 최신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셋째로, 본작은 꼼수를 쓰되 어차피 쓸 것 과감하게 쓴 것 같아 보입니다. 여성도 고관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나, 현실에 비해서는 타국을 오가기가 쉬운 편이라거나.

사실 이 대목들은 원형을 철저하게 지켜봤자 다양한 전개의 여지를 잃는다는 점에서 자충수일 뿐입니다. 더구나 이 정도 변형쯤은 마음 넓은 독자들이 암묵적으로 고개 끄덕이며 넘어간다는 점에서 과감 운운은 지나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생긴 여유가 한 두 가지 요소로 작용하고 말 뿐이 아니라 큰 틀에서 분명한 역할을 갖고 극에 어울리며, 이야기가 괜한 억지 같은 느낌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전개된다는 점은 정말 좋은 점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재료를 한가득 갖추고 잡탕을 끓이는 요리사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사족입니다만, 본작은 ‘판타지’ 장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현 연재 분량까지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판타지라 할 만한 부분이 있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포장사기가 되는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진짜 뭐예요.

여하튼 이상이 독특한 점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하는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연장선상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장르소설에서 동양풍은 비교적 미미한 입지를 지닌 것이 사실이고 한국, 조선에 이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나마도 대체적으로 로맨스 장르에 편중된 경향을 보입니다(어디까지나 본인의 좁은 식견 하에서 그렇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본작은 상당히 본격적으로 비주류를 건드리는 셈인데, 힙스터인 본인으로써는 그냥 좋습니다.

덧붙여 재밌는 캐릭터들이 많다는 점도 들고 싶습니다. 특히 주요 악역, 아니, 반동인물에 가까울 강희태라는 캐릭터의 성격도 마음에 듭니다. 작중에서 묘사되듯 그는 고고한 범이며, 사냥감을 집요하고 은밀하게 추적하여 물어 뜯고야 마는 면모를 보입니다. 모름지기 멋진 작품은 주인공의 상대가 훌륭해야 하는 법이죠. 넘어서야 할 벽이 우스워서야 넘어서는 일도 우스울 뿐이니까요.

이것으로 본작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아직 스토리가 본격화되지는 않은 듯 보이는데도 더 중언부언하는 것은 억지 같기도 합니다. 현재 4장까지의 이야기가 끝났고, 5장이 7월 즈음부터 시작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첫 장의 첫 장면인 강희태와 변정민의 대면은 언제 이루어질지, 각각의 욕망과 대의와 선의와 악의가 얽힌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지, ‘판타지’는 그 꼬리를 드러낼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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