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이돌을 좋아하다가 2차원으로 넘어갔는데 이렇게 또 아이돌을 접하다니 반가운 것도 잠시, 마치 세상 풍파에 찌들어버린 유치원 동기를 만난 듯한 내용에 착잡하면서도 세상의 새로운 일면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그 판에 이미 마음이 떠나있어서 느낄 수 있는 흥미 같아요. 재밌게 읽은 범죄 소설의 배경이 알고 보니 내가 사는 곳이라면 전처럼 즐겁게 읽긴 힘들 테니까요.
화자 한 명 한 명의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데다가 계속 시점이 바뀌기 때문인지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많은 게 휘리릭 지나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카메라가 휙휙 움직이는 뮤직비디오 같았어요. 여기 이 사람, 이 세트장에서 한 소절, 저기 저 사람이 지나가며 카메라를 데리고 저 세트장에서 또 한 소절 부르는 식으로요. 한 캐릭터의 여러 모습을 나눠서 보는 걸 좋아해서 전에 화자였던 캐릭터나 아는 캐릭터가 다시 나오면 여기선 또 다르다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연출도 취향이지만 복제인간과 관련된 것조차 모두 실존하는 돈벌이 수단처럼 느껴지는 게 가장 재밌었어요. 일단 제목부터가 고백이잖아요? 다들 나와선 내가 뭐 하는 사람인데 요즘 이런 일이 일어나서 힘들어!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저도 어디 다른 데 가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퍼뜨리고 싶어지는 재미였습니다. 정말 복제인간이 있다면 실제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이 세상 어딘가 있을 법한 설정의 캐릭터들의 대처법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넌더리를 내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렸어요. 아, 이래서 다들 욕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걸까요.
으으! 하면서 읽었지만 제가 사는 모습도 사실 이렇진 않은지 가끔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돈, 아니면 명예. 다들 생각하길 포기하고 그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뒤도 옆도 밀쳐내면서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린다는 인상을 받을 때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