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웅은 언제나 기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큰 위기가 닥칠수록 그러한 염원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죠. 그만큼 영웅을 동경하고,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야망가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듯이,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죠.
이 소설의 주인공 아나우도 그러한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용 사냥꾼 야헬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동경하고 있죠. 그의 서사만을 정리해보면, 하이 판타지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조를 훑기만 해도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전형적인 영웅 민담과는 거리가 멀죠. 오히려 해체주의적인 내용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아라우가 야헬과 같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정해진 바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실패하는 주인공일까요?
그가 어떤 주인공인지는 반복적인 서사와 문체를 통해서 은유적으로 강조합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상징적으로 제시되는 반복적인 이미지는 주인공의 희미한 의식과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과거를 통해 주인공의 행적을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작중 초반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묘사되던 주인공을 가둔 것은 사실 그 스스로였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나우는 안드라스를 완전히 쓰러뜨리는 영웅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숭상하는 야헬과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웅이 되는 대신, 그 스스로가 안드라스를 가두는 감옥이자, 간수가 되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를 왜 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까요? 애초의 목적을 잊어버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목적을 갖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을 이루는 데에는 어쩌면 아주 무거운 노력과 그것을 쏟을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동안 애초 목적을 잊은 채 현행 유지만을 목표로 맹목적으로 몰두하게 되기도 하죠. 혁명을 이룩한 영웅이 독재자로 변모하는 수많은 사례가 그런 모습이 아닐까요?
아나우 역시 스스로 감옥이 되어 안드라스를 가둔다는 애초 목적을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영웅에게 있어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지만, 아나우가 본래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점이 전화위복이 됩니다. 가장 위태로운 순간은 가장 커다란 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애초에 영웅이 아니었던 그는 영웅에서 악한이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웅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웅이 아닌 자가 영웅적인 행보를 통해 영웅 서사를 해체하는 매력적인 구조가 완성됩니다. 영웅에게서 찾아볼 법한 화려한 구원 대신, 아나우는 묵묵한 책임을 짊어진 채 긴 시간을 견뎌냅니다. 전설적인 영웅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숭고해진 셈입니다.
결국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영웅의 승리가 아니라 영웅이 아닌 자의 지속입니다. 아나우는 전설적인 영웅 야헬처럼 적을 단숨에 무찌르는 용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적을 붙잡아 두는 감옥이 되었고, 그것을 오랜 시간 견디는 간수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목적조차 잊어버릴 만큼 오래 싸웠지만, 바로 그 망각과 고독 속에서 영웅 서사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화려한 구원과 찬란한 승리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떠맡는 행위 말입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뒤집습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웅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무게를 홀로 붙잡아 두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웅 서사 구조를 뒤집는 아나우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영웅담으로 남게 됩니다.
상징적이면서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