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사회에서의 탈피 감상

대상작품: 형광등보기 (작가: 김병식, 작품정보)
리뷰어: VVY, 2시간 전, 조회 4

소견입니다만 전근대적인 소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가 누구에게나 다른 법인데, 저로서는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지긋지긋하고 불편하고 싫은 면모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이상적이거나 혹은 그만큼 매혹적인 세계 속으로 빠져들기.

그래서 보기 싫은 현실을 조명하는 전근대적인 소재: 신분제, 여성차별, 노동인권. 뭐 그런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소설은 싫어합니다. 그런 소설의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혹자는 회피형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어도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까지 불편하고 싶진 않은걸요.

<형광등보기>는 아궁이 불 대신(으로 추정되는) 형광등 보기를 강요당하는 조선 여성들의 생활 풍습 묘사로 시작됩니다. 경직된 성 역할의 답습을 비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구나. 그 정도로 생각하다가 형광등보기 점이라는 소재로 이어지면서 뭔가 정말 신비성을 다루는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형광등보기 점라는 문화를 제3자의 시선에서 기록하는 데 그칩니다. 여기서 그친다는 서술의 객체는 신비성에 한합니다. 가부장제를 유지하던 수단이었던 형광등보기가 ‘보편적으로 학습 가능한’ 점을 통해 부, 나아가 권력 역전의 매개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이자 순식간에 인식의 대전환이 찾아오는 흐름이라든가, 여성 문화가 지식인들 사상 표현의 수단으로만 취급되는 지점 등 사회비판소설로서 굉장히 세련되게 맥을 짚는 구석이 있습니다. 비록 이런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만 이만치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풍자라면 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좋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아쉬웠습니다. 이야기는 마치 형광등보기 점의 신비성이란, 흐려진 과거에 덧입혀진 비현실, 마치 지어낸 환상처럼 끝맺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그 형광등보기 점을 통해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풍자로서의 기능적 면으로 보나, 제가 추구하는 이야기의 환상성으로 보나 딱 그 지점이 모자랐습니다.

갑자기 2부가 시작됩니다.

이야기는 신비성을 되찾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닙니다. 원시적 신비.

바로 빛이라는 소재에서 착안한 근원적인 경이가… 이 또한 매력적인 요소인데, VR 속 버그라는 대단히 현대적인 배경 속에서 그려집니다.

1부와 2부를 연결하는 직접적인 문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빛이라는 소재가 두 이야기를 이으면서, ‘핍진성 있는 신비’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집니다.

그로써 이 경이적인 소설의 구조도 완성됩니다.

현실에서 출발해 그 불편한 모순을 지적하고, 최후에는 거기에서 아예 탈피해버렸습니다.

천재적인 작품입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놀랐습니다.

이야기 중 1부만 존재했다면 위처럼 아쉬웠을 것이고, 2부만 단독으로 존재했다면 아무 감흥 없이 심심했을 것입니다. 두 이야기는 반드시 순서대로 연결되어야 기능합니다. 그로써 지나온 신비성에 역사가 부여되고, 진실함을 인정하게 되는 인식의 반전에서 독자의 전율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참신한 구조로 유미주의적 신비를 구현할 수 있다니.. 감탄이 나옵니다.

정말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 구조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러나저러나 소장 가치가 있습니다. 강력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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