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충에게 자비를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아마존 몰리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7년 6월, 조회 215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겠죠. 이렇게 쓰니 제 자신이 과연 리뷰를 할 자격이 있는지 부끄러워지기는 합니다만… 어쨌든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탁월합니다. 대학원 생활에 대한 적절한 디테일과 전문가도 의외의 믿음에 빠진다는 공감가는 소재로 시작하여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의문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도입부가 물 흐르듯 이어지고, 일단 거기까지 읽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사건의 진상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거죠.

게다가 사실감 있는 도입부는 지나가는 여자를 공격한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분명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화자로 등장하는 과학신문기자의 시니컬한 캐릭터도 독자의 마음을 잡아 끕니다. 그 뒤로 글은 자연스럽게 술술 읽힙니다. 지나가는 여자를 공격한 남자와 그 행동의 이유가 된 미스터리한 여인 사이의 이야기가 조금 길게 이어지면서 도대체 언제 실마리를 주려나 하는 조바심이 들기는 했습니다. 남은 분량을 확인하면서 너무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고요.

스포일러가 될 테니 결말에 대해 말할 순 없지만 마무리 역시 깔끔한 편입니다. 이야기는 끝까지 흥미롭게 이어지고 너무 갑작스럽거나 억지스럽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좀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소설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화자이자 여성인 기자의 독백을 통해 이 소설의 또 다른 결이 드러납니다. 남성과 여성의 소통 부재와 단절에 대한 이야기죠. 그러고 보니 제가 글을 읽으며 중요한 것을 또 놓치고 읽었더군요. 수수께끼에 너무 집착하는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초반에 화자의 시니컬함이 너무 일반적으로 강조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중간에 이야기를 하는 남성 연구자와 듣는 여성 기자 사이의 불협화음이 성차에 의한 갈등이 아니라 그저 화자의 시니컬함 때문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피임에 무감각한 남성은 좀 많이 뜨악하긴 했습니다만, 다른 소소한 에피소드에서의 연구자과 기자의 입장 차이는 성차로 읽히기에는 조금 미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충에게 실험에 대해 설명해 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대목에 까지 이르면 과연 그 남성 연구자가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의 잘못을 했는가에 조금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이 소설을 백프로 공감하면서 읽기 위해서는 미스터리한 여성과 화자인 여성이 공유하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이기 까지한 그 사상에 대한 사전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글을 통해 그런 사상을 설득력있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까지는 성공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좀 더 아쉬운 것 같습니다. 화자의 분노에 대해 단지 연구실 생활에 의해 뒤틀어 진 것이라고 비껴갈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런 사상에 도달할 수 있을 만한 공감가는 에피소드를 좀 더 심어 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다른 것을 다 떠나 이 소설은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잘 짜여진 글입니다. 그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불통이라는 주제에 좀 더 집중하시면 소설의 중요한 결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실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분들, 특히 남성 분들이 이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 지 궁금합니다. 화자에 공감하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 작가의 친절함이나 제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성과 여성이 이미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멀어진 이종족이기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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