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무언가’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무언가 (작가: 땀샘,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4월 4일, 조회 27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서사는 ‘단순’합니다. 습하고 무거운 안개가 잔뜩 낀 밤, 차를 몰고 운전 중이던 나는 실수로 사람을 ‘가볍게’ 치고 맙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산을 넘어서는 ‘어디든’ 데려다 줄 것을 요구하기에 나는 그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와 별 진전없는 대화를 하며 나아가는 도중, 주변의 차들이 서서히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게 됩니다. 그 남자는 인부에게 상황을 묻고, 인부는 앞을 ‘무언가’가 가로막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윽고 나와 남자는 대화를 하며(그 것은 남자의 강권에 가깝지만) 무언가에 대해 유추를 시작하고, 남자는 그 것이 시체일 것 같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리고 내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남자가 나를 붙잡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서사입니다. 인간은 서사를 통해 시간을 조직하고 인지해왔습니다. 그 것은 수직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인과에 따라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구체적인 서사를 관찰하려면, 조금은 진득하게 작품을 살펴봐야 합니다. 물론 완전히 서사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간명한 문장조차 서사를 품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 소설은 오브제와 분위기 묘사들을 한 ‘서사세계’에 배치함으로써 수평적인 서사를 구성하는 듯 보입니다. 그렇게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는 습하고 무거운 안개 속 분위기에서 ‘무언가’는 우리에게 그 것이 무엇인지 규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무언가’로 정의 내림으로써 다양한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남자가 시체임을 바로 알았다는 것에 근거하여 그가 나를 죽이려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면 사실 남자를 가볍게 쳤다고 한 건 나의 착각이었고, 실제로는 큰 사고가 났다는 건 어떨까요. 그가 유령으로써 나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면 남자는 형사였다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쪽도 아닐 수도 있고, 한 쪽만 맞을 수도 있고, 전부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의도적으로 가려졌기에 우리는 상황을 상상할 수 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이야기는 풍요로워집니다.

우리가 서사로써 규명하려는 행위는 불확정성의 경험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본능에 기인합니다. ‘알고 싶지만 알도록 허락되지 않는 상황은 그 자체로 일종의 고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남자가 나에게 무엇을 하려하는지는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남자는 그저 그 것이 재미있기에 그렇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존재 자체로 나에게는 위협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장르를 무엇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까요. 호러인가요 스릴러인가요? 작가는 이마저도 우리에게 맡기려는 듯 ‘기타’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결국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입니다.

이런 지점에서 술에 취했다는 상황과 시체를 중심으로 ‘무언가’라는 미지의 것을 환기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건 작가의 손을 떠난 우리의 손에서 보다 다채롭게 이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에게 기이함을 전달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이상해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혹은 적어도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느끼게 합니다. 안개 속에 가려진 채 습하고 무거운 무언가는 우리의 상황을 천천히 죄여 옵니다. 그 알 수 없음이 잔인하면서도 즐거운 것은, 우리가 소설과 적당히 거리감을 뒀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화자와 호흡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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