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욕망은 추상명사라 한다. 그것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어서 때로 은밀하거나 교묘하다. 그러나 예술 안에서 감정과 욕망은 때로 감각화된다. 순간의 욕망을 시각화하여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거나 감정의 토막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의 기분을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술은 그런 의미에서 ‘감정의 감각화’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현대의 기술과 인간의 능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이산적이고 파편적이다. 그리고 어느 것도 완벽히 감정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의 그림이나 조각, 음악 등의 예술적 산물로 만들어지는 감정은 순간의 것이며 무한히 연속적이기가 힘들다. 글이나 그림, 조각과 음악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감정의 사소한 변화와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문자는 선형적이고 이미지와 형상은 물질이 가진 표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렇기에 뇌의 파형을 연속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등 관련 기술의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인간 욕망의 순수한 감각적 재현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추상의 실현에 골몰한다. 그들의 무수한 시도는 인간 감정의 다양한 형태를 드러낸다.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절망에 대한 탐구는 예술의 존재 이유 중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웨어러블 기기 등 ‘착용하는 기술’이 한참 발전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투박하지만 원래에 가까운 형태로 시각화할 수도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감정은 어떤 색과 모양을 띠게 될까. 내가 주변에 내뿜는 욕망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
여기 지구에서는 수 세기가 걸릴지도 모를 ‘감정의 시각화’에 성공한 ‘개체’가 있다. 그것의 몸은 주로 자신의 ‘만족감’을 드러내는 데에 충실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여자’의 외형을 가진 이 존재의 이름은 ‘지아’. 아니, 어쩌면 그녀는 무척 인간적이어서, 어느 정도는 우리와 같다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나의 보잘것없던 인생에 떨어진 운석 하나
이준 작가의 소설 〈발광하는 여자친구〉는 매우 시각적으로, 분명히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다. 소설 속 여자친구의 ‘발광’은 ‘미칠 광’이 아니라 ‘빛 광’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몸에서 빛이 난다. (그녀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 영민이 우연찮은 기회로 만난 지아는 몸에서 빛이 날 뿐 아니라 머리카락의 색을 바꿀 수 있으며, 시공간을 조금씩 뒤트는 능력도 있다. 작가의 전작인 〈자매의 탄생〉에서 등장했던 트랜스젠더 여성 ‘리아’의 반가운 등장과 어김없는 호들갑 덕분에 초반의 지아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이던 지아는, 영민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둘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본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영민을 보자. 영민의 캐릭터는 한국 남자(흔히 줄여 말하는 그 ‘K-남’)에 가깝다. 일반적인 ‘K-남’ 캐릭터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약간은 이성적인 면이 있지만, 영민은 어딜 가든 정체성을 숨기지 못하는 ‘그들’의 특성을 은근히 드러낸다. 베를린에 두고 온 여자친구의 임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등장부터가 그렇다. 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를 “확률 게임”으로 여기는 태도와 아름다운 여자를 ‘앙큼하다’고 평가하는 대목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영민은 금세 지아에게 포섭된다. 지아는 영민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데에 유감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기술’로 단숨에 복잡한 바를 벗어나 영민의 오피스텔에 도착한다. 독자는 환상인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공간 이동을 경험한다. 지아가 범인(凡人)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아와 영민은 오피스텔에서 관계를 갖는다. 둘이 서로를 탐하는 과정에서 지아의 몸은 빛나고, 습도에 따라 그녀의 머리색이 변한다. 지아는 빛으로 자신의 만족감을 드러낸다. 그것은 영민에게 ‘부담’이 된다. 지아의 몸은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민은 지아의 몸을 만족의 붉은 빛으로 물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아를 어떻게든 자신의 의지로 움직여보고자 한다. 술기운과 이런저런 쾌락에 영민은 지아가 ‘발광하는 존재’라는 점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지아의 불그스름한 만족감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지아가 닷샛날 저녁에 보는 다큐멘터리 채널, 그리고 그녀가 떠난 뒤에 재생되는 텔레비전은 서로 다른 두 몸의 결합을 강하게 암시한다. 극렬할 정도로 자극적인 사마귀의 교미와 펭귄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일삼는 바다사자의 영상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교미 후 한 존재가 잔인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큐의 내용을 영민과 지아의 상황으로 깊이 끌고 온다. 독자 역시 둘의 관계 이후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들 중 한쪽은 죽음에 달하는 극적인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인간 이상의 존재인 지아에게 해당되지는 않으리라고.
영민의 삶에 지아는 마치 ‘운석’처럼 등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행성에 운석이 떨어지는 행위가 다양한 과학 소설에서 정자와 난자, 여성과 남성의 결합 이미지로 형상화되곤 했다는 점이다. 이런 은유에서 운석은 자연스레 남성-정자의 이미지를 획득한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인지 이 소설에서 영민에게 나타난 ‘운석’은 지아다. 행성으로 돌진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 여성은 자신의 ‘씨’를 뿌린다. 그동안 남의 임신을 ‘확률 게임’으로 여겼던 한 남자에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던 초반 영민의 등장 장면은 수미가 상관되듯 결말부에서 완성된다. 지아의 붉은 만족감은 종족을 번식시킨다는 쾌감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교미’ 방식에 따라 지아는 자신의 씨를 영민에게 심었다. 사마귀 수컷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듯, 영민은 공포에 사로잡혀 새벽을 달린다.
“만약에 진짜 임신한 거면 부럽다. 나는 꿈이 아이 낳는 건데.”
트랜스젠더 여성인 리아의 순수한 부러움은 영민을 더욱 잔혹한 감정으로 내몬다. 누군가의 부러움을 뒤에 두고, 영민은 끝내 길거리 신호등 맞은편의 또다른 외계 신사를 발견한다. 마치 이 ‘씨 뿌리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신사의 황금색 머리가 지아의 것과 마찬가지로 반짝인다.
발광(發光), 발광(發狂)
나는 이 소설의 ‘발광’을 發狂으로 읽기로 했다. 지아의 행동은 영민을 미치게 했기 때문이다. 여자의 발광과 남자의 발광이 교차한다. 자신의 후손을 지구에 남기기 위해 이 행성에 찾아온 지아는 또 어디로 간 걸까. 그녀가 영민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준 작가의 시도는 이 소설에서 단순히 기존에 ‘씨’와 ‘후손’에 집착했던 남성과 그것을 ‘받는’ 위치로 여겨졌던 전통적-차별적 여성관의 물리적 위치를 바꾸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번식을 갈망하는 외계 생명체의 출현, 지아의 정체가 여과 없이 밝혀지는 결말과 영민의 임신, 조연이자 훌륭한 엑스트라로 등장한 리아의 얽히고설킴은 〈자매의 탄생〉보다 정교하게 확장된 이 소설의 구조 안에 착실히 정돈되어 있다. 두 소설의 간격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점점 자신의 소설관을 널리 구축하고 있는 이준 작가의 소설이 이제는 기대가 된다. 〈발광하는 여자친구〉는 그의 다음을 기대해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주는 단편이다.
어떤 독자는 지식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어떤 독자는 만족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어떤 독자는 새로운 세상과 이전의 세상을 가늠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당신이 누구든 이 소설은 새로운 지평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발광은 어떤 감정의 발현을 충실히 시각화한다. 급변하는 네온사인의 값싼 화려함과 지아의 몸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의 빛을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감정’의 유무에 달려 있다. 밤의 네온사인은 단순하고 인공적인 빛이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노래방 도우미, 안마방, 성인용품, 텐프로, 키스방, 피시방, 휴게실, 성인오락실, 당구장’의 불빛 안에는 획일화되고 음란한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아의 발광은 그 자체로 만족스럽다. 자신의 생각을 연속적으로 녹여내는 그 몸은 다층의 감정을 발산한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은 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지아의 홀연한 사라짐은 지극히 다양하고 당연한 해석을 낳는다.
그러므로 미치는 것은 오직 영민이다. 이 어지러운 지구에서 오직 타인으로 여기던 누군가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될 그의 공포는 ‘확률 게임’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서 역설적으로 어두운 빛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일곱 욕망의 어디에도 포함될 수 없는, 아득한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