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집이 풍기는 기이한 분위기는 그곳이 일상과 단절된 환상의 공간이라는 상징입니다. 환상 자체가 내포하는 성질은 판타지의 장르적 성격으로 향하기도 하지만, 그 기이한 성질로 말미암아 호러가 갖는 성질로도 향하기 마련입니다. 토도로프는 환상의 제1 성질을 독자의 망설임으로 정의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사실인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단순히 망상에 지나지 않는지 망설이며 또 (독자들과 함께) 의심스러워합니다.’1 귀성에서 벌어진 일들은 기이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기이한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세계에는 그 기이한 주술의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기에, 소설은 이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사건을 흡수하면서 불투명하게 변합니다. 그 기점에서 우리는 무언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그 인정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냐에 따라 환상의 장르가 판타지로, 혹은 호러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의 세계, 악마도, 요정도, 흡혈귀도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이 세계에, 이 친숙한 세계의 법칙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을 알아차리는 자는 가능한 두 해결책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즉, 그 사건이 감각들의 착오, 상상력의 산물일 뿐 세계의 법칙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일어났고 그것이 현실 일부분이지만 그때 그 현실은 우리가 모르는 법칙들에 따라 지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2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상의 텍스트를 시와 알레고리로 읽어서는 안 된다’3라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비유로서 우리가 인지하는 것이 아닌 사건 그대로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행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시 혹은 알레고리로 해석한 순간 환상이 구가하던 비현실성은 무너지고, 우리의 현실로 ‘전위된 사실’이 그 환상을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환상이 호러에서 작동하는 기능은, 우리의 현실을 침윤하는 그 장치가 우리의 사실로 규명되지 않아 실질적인 위협으로 현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실로 규명된 ‘사실’ 자체에서는 우리는 ‘호러’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무섭다는 감정을 환기하지 않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현현하는 위협은 우리가 그것에 대한 대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러에서 위협은 어느 지점을 넘어선 순간 우리의 선택의 경우의 수를 소거합니다. 오로지 사건과 결과만이 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 <귀성>에서 호러적인 요소는 한 가정을 파탄시킬 뻔하는, 신체 강탈의 행위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행위가 발생하고 독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지 망설이게 됩니다. 영석이 맨 처음 불빛을 만나고, 그 불빛이 사실 ‘핏기없는 얼굴 가죽’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날 이후로 열병에 걸린 듯 침대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사건의 시작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망설이게 됩니다. 그 불빛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영석이 열병에 걸린 듯 침대 신세를 지게 됨으로써 무언가 벌어졌음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더욱 호러스러운 부분은 ‘핏기없는 얼굴 가죽’이라는 오브제가 환기하는 오컬트적인 이미지적 공포가 있을 수 있겠죠.
작 중 인물로부터 투사되는 망설임은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생물체 위로 솟은 귀를 가진 무언가를 따라 다혜는 나무 창고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해골을 발견하게 되죠. 이 과정을 ‘동화책처럼’이라고 작가는 묘사합니다. 이 부분이 이상한 세계로의 진입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공간으로의 진입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창고 안에 토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토끼는 무엇이었을까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게 함으로써 소설 전반에 부과된 망설임은 분명해집니다.
이런 진위는 작중 장치로 설정된 다양한 요소들에 의하여 내적 현실을 조망합니다. 병하가 영석의 가족사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부분과 수향이 공동묘지에서 병하의 아내와 딸의 무덤을 찾아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기이한 현실 속에서 진실 –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여정 속에서 힌트들은 다양하게 발굴됩니다.
가족사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부분은 소설의 근간에 설치된 우연으로부터 뿌리를 내리는 노력입니다. 주씨 성을 지닌 ●●본관을 지닌 사람이 우연히 저택으로 찾아오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긴 세월을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석연치 않은 부분이야말로 이 소설의 전체가 어떤 기묘한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름을 환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병하의 태도와 그의 가족무덤들의 기이함으로 말미암아 내적 현실은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가짜일지도 진짜일지도 모를 세계에서 인물들은 서 있고 끝내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육체를 강탈함으로써 생명을 연장하려는 병하의 진실이 밝혀질 때, 끝내 이 망설임은 결정을 요구받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받게 되는데, 이를 성립시킬 경우 기이 장르가 되며 이성적 설명 없이 그 자체로 합리화될 경우(억지스럽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소설 내부 논리로 성립이 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경이 장르가 되게 됩니다. 이 소설의 경우 합리성 – 귀신의 존재와 그를 다루는 목걸이라는 존재를 설명하여 기이 장르로 진입하게 됩니다.
환상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재구조화하는 미메시스(모방)로서의 문학 행위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부재하지만, 상상 속에서 실재하는, 인식 가능한 세계의 표현물로서 제시됩니다.4 영생에 대한 욕망이 타인의 육신을 탐함으로써 추잡해질 때 환상은 그 자체를 조망하며 그 욕망을 호러의 영역으로 치환합니다. 육신을 빼앗기는 상황 자체도 공포지만, 그것을 탐하는 탐욕 역시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그로써 일종의 금기화되어 공포의 전면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 공고한 금기를 심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자의 연대입니다. 남편을 잃고 주술로 인하여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원혼들과 미진,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가 될 뻔한 수향까지, 이들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병하의 약점인 목걸이를 공략해내는 데 성공하여 주술을 끊고 복수에 성공합니다. 이 망설임이 만약 끝내 남았다면, 그로써 망상으로 그쳤다면 망설임의 테마는 공고해졌을 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이 장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이 장르로써 명확한 근거를 남기는 것은 병하가 남긴 금괴들입니다. 금괴들은 미진의 전리품으로써, 그리고 위로의 연대를 이루는 수단으로써 작동합니다. 그리고 수향과 수향의 딸까지 가족같이 보였다는 그런 묘사는, 이런 연대로서의 극복이 이뤄졌음을 뜻하는 듯싶습니다.
호러가 호러다울 수 있는 까닭은 금기와 전복의 위반을 통해 우리에게 전율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호러적인 이미지들을 구체화하면서도, 병하를 통하여 영생에 대한 탐욕을 금기로써 제시하여 그 위반을 전복시킴으로써 전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고조되는 급박한 상황을 통하여 소설의 구조를 잘 살렸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호러를 구성하는 큰 요인들 중 하나인 이미지들이 평범한 부분은 지적할만 합니다. 호러적인 이미지가 갖는 한계는 명확합니다. 동시에 실제적인 이미지를 마주할 수 없는 글의 한계는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미지의 것을 구체화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는 호러 소설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이미지들이 다소 파편적으로 제시되어 고딕 소설의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풍광과 전체적인 배경이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아무쪼록 성장을 위한 조언이 담긴 리뷰를 요청하여서 부족하게나마 의견을 몇자 적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귀성은 토도로프의 망설임의 테마를 중심으로 흡사 하룻밤 사이의 기담처럼 호러를 쌓아가는 작품입니다. 우연이라는 속성을 통하여 테마는 가역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갑니다. 그 속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루의 진위를 기이한 현실이 아닌 무언가로써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내적 현실은 촘촘하게 쌓여갑니다. 그 근간에는 오컬트적인 오브제를 통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있습니다. 최후에, 권선징악을 이룩하듯 여자의 연대로써 이를 해결합니다. 그 결과물들로 하여금 소설 내적 현실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기이장르로 확장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와 소설 내 장치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찾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조성되는 긴박감 역시 즐거웠고요. 아무쪼록 좋은 작품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