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작품 소개문이 눈길을 끈다. 줄거리는 기생충 따위가 숙주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제목에서 쉽게 연상됐다. 그러나 관련 해시태그 #말, #욕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라 친근하면서도 숙주와 연관 짓기엔 의아한 소재라 생각했다. 무슨 악플이라도 나오는 걸까?
험한 욕지거리나 혐오감 서린 말과 같은 인간 내면의 악한 부분을 먹고 자라는 기생충이 있다. 그것은 오늘도 먹잇감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대부분 인간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악한 본성을 꿰뚫순 없다. 그렇기에 기생충은 누가 봐도 성질 더러운 만만한 인간을 보통 숙주로 삼는다.
하지만 정신을 교묘하게 조종해 악행을 부추기는 기생충의 본질상 그런 상대는 도무지 재미가 없는 것이다. 기생충은 곧 숙주의 부정적인 언어 표현 하나하나를 수단으로 삼아 그것의 대상으로 이동한다. 때로는 기회를 틈 타 공간상의 제약 없이 전파를 타고 숙주를 교체하기까지 한다.
상처받는 상황에서 제대로 표현하진 않지만 문득문득 얼굴 한 편이 일그러지는 사람, 입을 꾹 다물고 문제를 넘어가려는 듯 보여도 마음속엔 이런 식으로 쌓아둔 마음의 이물질이 한 더미일 그런 사람. 우리 시대 아주 보통의 인물들에게 말이다. 평범하고 순해 보이던 숙주가 자신의 도발에 흥분하여 의외성을 드러내는 순간, 기생충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숙주들은 각자 왜 비싼 백화점 향수를 사느냐고 타박하는 남편에게 ‘돈도 못 버는 쫌팽이 같은 xx’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자신을 무시하는 상사에게 우발적으로 물건을 던져 다치게 만들고도 사과하지 않고 ‘야이 개xx야, 왜 나한테 xx이야’ 뻔뻔하게 욕설을 내뱉는다. 한 번 언어로 표출된 분노, 혐오, 증오와 같은 내면의 정서는 정신에 각인되어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결국 숙주를 자기파멸에 이르게 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근본 원인인 기생충마저 소멸시킬 정도로 말이다.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있다. 그렇지만 습관적으로 굳은 언어 표현은 자판기처럼 자동적으로 입 밖에 내뱉어지는 듯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 세계엔 우리 정신을 조종하는 기생충이 뚜렷이 없지만 존재하는 것만 같다. 영리한 설정이라 느꼈던 부분은 현실에 있을 법한 갈등 사례에서 설왕설래하는 각종 욕지거리와 저급한 표현을 듣자 하니 불쾌함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 고고한 사람인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생충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리 잡는 순간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문제의식 자체를 갖지 않게 된다는 점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