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넘치는 콩나물을 만드는 기술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이혼의 기술 (작가: 달총,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2년 2월, 조회 61

제한적인 상황과 점진적으로 부족해지는 자원 등, 멸망 이후 부분을 다루며 긴장감은 천천히 고조됩니다. 일종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주인공들에게 미션이 주어지고 그 것을 해결해야만 하죠. 하지만 미션을 수행하는 일은 골치 아픕니다. <이혼의 기술>은 코인 채굴과 기후 변화, 전염병 그리고 핵전쟁으로 황폐화 된 지구를 유사 시간 여행으로 되돌리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과학자의 이혼을 설득해야 한다니. 그리고 그 과학자의 이혼으로 인한 실의만이 치사율 100%나 달하는 전염병의 치료제 개발의 동기가 된다니. 어찌 보면 처연하고 어찌 보면 유쾌한 시점에서 소설은 진행됩니다.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듯합니다. 이혼을 하게끔 유도하는 언술 능력과, 그리고 이혼을 하게 만들기 위해 오션넷이 제공하는 시간 여행(엄밀히 말해서는 시간 여행이라고 축약해서는 안되겠지만, 편의상 시간 여행이라고 합시다.) 수단 모두 ‘기술’이 될 수 있겠죠. 재미있는 점은 오션넷으로 표상되는 슈퍼컴퓨터의 기술력은 끝도 없이 발전했지만, 정작 해결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점은 아날로그적인 대화의 기술이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양과 루는 오션넷이 제공하는 가상현실에 취해 있을 뿐 실질적인 사회적 경험을 거의 못했다는 맹점이 있죠. 물론 가성 현실에서의 체험이 그 것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작 중 인물들이 스스로 공언하듯, 가상현실의 체험이 그들의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기여하며 외로움을 상당히 소거시켜주는 것처럼 보이는 데, 개인 자체는 (쉽게 공감을 하기 어려워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갈구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렇지만 작 중에서 묘사되는 체험이라는 것은 환각, 혹은 대양과 같은 해방감의 간접 체험이라는 점에서 사회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션의 수행 여부는 불확실해지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긴장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긴장은 일방향적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데, 또 다른 축인 오션넷의 시나리오 채굴 메커니즘이 그 것입니다. 결말부의 양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기계 장치로 말미암아 모든 시나리오의 기능들이 관측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결정론적인 세계관이 등장합니다. 근데 모든 게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단편적으로 제시된 정보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의심은 곧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확대되죠. 그렇다면 그 의심하는 상황까지도 관측되었는지, 혹은 관측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다만 수치로 표시 되는 데, 그 것이 가능성입니다. 가능성이라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오션넷이 채굴한 모든 시나리오 중에서 멸망을 막게 되는 경우의 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가능성이 결정론적인 세계 속에서 유효한 세계인 까닭은, 어디까지나 멸망을 막으려는 합목적성에 의한 세계이기도 하지만,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현재에서 진자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 긴장감에 매몰되며 비장하게 작품이 전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뉘앙스는 밝고 유쾌하며 냉소적인 어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양과 루가 오션넷으로부터 얻는 가상현실로부터의 해방감과 환각 쾌감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이되 실제가 아닌 것들로부터 오는 쾌감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이들의 체험은 실제 사회의 무언가의 편린이지, 사회 그 자체가 아니니까요. 만일 프로젝트가 망해버려서, 그저 쾌락 위주로 소모되는 가상현실에 매몰되어 죽음의 유예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이 양가성 속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거에요. 생산성 없이 파국을 향해가지만, 그럼에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 회고를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다가 먼 훗날 외계인이 찾아와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일까요? 전반부, 코인 대란으로 인한  환경 파괴, 기후 변화, 핵전쟁 등등 내용들을 요약하며 정리하는 이야기는 비장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양가성을 드러내며 심각하게 무겁지 않습니다. 개인의 긍정적인 방향성 (코인이라는 무해한 것의 끝)으로의 변화가 이내 파국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그리고 그 파국 속에서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오션넷 창조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은 이 양가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것은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동시에 작품에 이입할 수 있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이는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아이러니가 주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시의성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특히 코인이나 전염병등은 과거와는 달리 현재 세태를 긴밀하게 묘사하는 코드로 작동되어 왔습니다. 그만큼 삶의 패턴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 것에 많이 휘둘리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죠. 그리고 인재(人災)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면이 부각된 것일 수도 있을 거에요. 이런 시의성은 그로 하여금 우리의 사회를 반추하게 하는 기능을 맡아왔습니다. 이 소설에서 시의성은 일종의 미래 예측을 통한 SF의 성질로써 발화되기에 장르적인 성질을 통한 사회를 바로 보게 하죠. 물론 SF적인 성질이 이런 시의성만 기여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기는 하겠지만,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식으로 발전했고, 그 오션넷이라는 장치가 어떤 식으로 구동하는 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사회 구조적으로 영향을 갖는가도 따질 수 있겠죠. 다만 이 소설에서 그런 형질이 다소 빛이 바래는 까닭은, 그리고 환경적인 영역에서의 미래 조망이 유독 빛을 발하는 까닭은, 멸망한 사회에서 오션넷의 기능은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다른 가치를 잘 따지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죠. 

어쨌든 최종적으로 햇빛이 비치며 콩나물들이 자라는 장면에서 무언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까닭은, 이 유쾌함과 긴장감을 잘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점에서 희극의 구조가 그대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조되는 위기 속에서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지점에서 모든 것이 해소되는 부분은 5단 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합니다. 물론 이 해결이 깔끔하게 서스펜스를 해결하는 결말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거에요.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쾌감을 선사하는 까닭은 유쾌한 논조가 그대로 이어지며 일종의 반전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겠죠. 이런 경위로 콩나물들이 자라는 것에서 우리들이 묘한 해방감과 따스함을 느끼는 까닭은, 그런 연유에 기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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