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보다 차가운 세계 공모(감상)

대상작품: 지속 가능한 죽음으로부터 (작가: 위래, 작품정보)
리뷰어: DALI, 1월 15일, 조회 41

익숙한 규칙을 비틀거나 우회하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스케치해낸 독특한 좀비물입니다. 인물이나 사건보다는 발상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 동력이 되고요. 좀비로부터 촉발된 대혼란과 그 이후를 다루는 장르에 독자가 흔히 기대하는 지옥도가 이 작품에선 정반대로 펼쳐집니다. 좀비는 관료적인 기술 논리에 꽉 맞게 편입되고, 인간은 여전히 그 위에 군림하며 살아가는데, 이상하게도 여긴 산 사람들의 세상 같지 않죠. 낯선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야기는 바로 그 위화감을 붙잡고 전개됩니다.

 

아마 이 안에서도 좀비 출현과 대창궐까지의 시나리오는 여느 독자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 작품이 정말로 돋보이는 지점은 그 이후부터예요. 인류는 짧은 혼란 끝에 세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것도 아주 말끔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내죠. 작품 속에서 이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용어가 바로 ‘Z테크’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좀비의 체력을 새로운 에너지 동력원으로 쓰게 되면서 새로운 산업 분야가 열린 것이죠.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 좀비의 위상은 증기와 전기,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뒤를 잇는 5차 산업혁명의 핵심 자원인 겁니다.

 

좀비로 인한 지구적 재난을 일종의 경제 현상으로 바라보고, 곧바로 기회의 발판으로 삼는 인류의 모습에는 고무적이기보다는 어딘가 섬뜩한 구석이 있습니다. 양가적이죠. 충분히 안도할 수 있는 긍정적 상황임에도 여기선 기획된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배음이 짙게 울리거든요. 맨 처음에 Z테크의 가능성을 발견한 계기는, 인류사에서 눈에 띄는 진보의 시작이 으레 그랬듯 다소 엉뚱한 행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이 좀비의 등 뒤에서 낚싯대에 매단 생고기를 띄워주면 좀비는 제 눈앞의 생고기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얼마 뒤 인간은 좀비를 쳇바퀴 속에 넣어 동력으로 쓰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고안해냅니다.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인간만이 생각해낼 수 있을 법한, 아주 개연성 있는 발상이기도 하지요. 어쨌거나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는 그렇게 다시 균형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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