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소설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어느 날 요의가 급해서 화장실에 갔더니, 열리지 않는 옆 칸에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것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으로 생각해 해당 칸을 확인하려 나오는 순간 소음은 그칩니다. 그럼에도 확인하기 위해 열리지 않던 문을 건들자 문이 열리고, 그 곳은 평범한 화장실 칸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소음의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착각이라고 생각한 후 안심하고 손을 씻자 다시금 소음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고장이라는 칸과 청소 도구함을 차례로 확인하지만, 그 어디에도 원인은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을 묘사하며 ‘미지의 것’을 전제합니다. 일반적으론 알 수 없는 것에 의한 공격에 현실을 타격을 입고 공포를 환기합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공포는 어쩐지 수상해 보입니다. 실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공포는 철저하게 주인공의 시점에서만 서술될 뿐, 객관적인 사실은 어디에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화 같지 않은 것이 실화라고 선언한 순간, 소설 내의 현실은 전복됩니다.
있을 수 없는 사실이 소설 내에서 있을 법 해질 때 공포는 현실을 침윤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반전의 징후도, 금기의 전복도 없습니다. 그저 운 나쁜 것만 같은 누군가의 처절할 정도의 심리 묘사만 이 공포를 묘사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 소설에서 기이할 정도의 만연체로 제시되는 상황은 상당히 강박적인 뉘앙스를 가집니다. 그런데 화자의 지속적으로 추측하려는 행위는 합리화를 통한 공포의 극복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기묘할 정도의 강박적인 만연체는 오히려 화자가 미쳐있음을 밝히는 징후로도 읽힙니다. 그 것에 대한 근거로 이 소설 내에서 화자는 신경증적인 불안을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저것과 일치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동시에, 그 것은 내게 상상의 여지를 충분히 줄 법한 경계에 놓여 있었다.
나는 타인의 죽음을 직접 마주한 전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언젠가 경험한 일인 것 마냥, 필름 같은 이미지의 잔상이 머리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일생에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낯선 감상이 밀려왔다. (중략…) 이 기이한 불협화음은 내게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을 불시에 일으키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에 빗대자면 공포와 불안, 우울과 신경증적인 정신착란이 이런 수준의 음파를 띄고 있을 것만 같다. 소리의 파급력은 그만큼이나 상당했다. 이에 잠시간 노출됐을 뿐인 나조차 정서적 강박에 돌연 사로잡히는 착각이 일 정도였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모든 서술은 화자의 주관에 근거할 뿐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묘사는 없습니다. 그런 주관성에 의존한 서술들이, 강박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이 모든 사실의 객관성은 시험 받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소음이라는 악몽이 나의 두려움의 감정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반복된다는 고백은, 결국 이 모든 것이 화자의 강박적인 병세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제시됩니다.
더욱이 이런 근거로 열리지 않던 문이 자연스럽게 열린다는 묘사에 이르러서는, 이 주관성이 소설 내의 현실을 침윤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객관적으로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린 후의 고백은 이런 정신착란의 의심을 더욱 깊게 합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고 거대한 착각 혹은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렇다. 내 공포는 허상이었던 것이다.
이 화자의 고백은 곧바로 찾아온 소음에 의해 합리성을 의심 받습니다. 지속적으로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화자의 강박은 끝내 다음의 묘사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원인 불명의 그 소리가 귓가를 감돈다, 여전히. 아니. 외려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무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맥박이 두서없이 요동친다. 심장이 방망이질 치는 감각과 예의 그 소음이 뒤섞여 내 머리속을 순식간에 집어삼킨다. 눈앞이 새하얘진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망설임이 발생합니다.
이 망설임이야 말로 이 소설이 호러적인 환상에 머물게 함과 동시에 기이 장르의 영역에 머물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보를 의심하고 또 일부를 수용함으로써 기묘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 것은 화자가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품을 때처럼 양가적인 묘사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아무것도 믿을 수 없지만 무언가는 벌어진 기괴한 세계에서 주인공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축하 해야 할 지 안타까워 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