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림 남자와 올겐트라 여자의 이야기. 1화에서 엿본 도입부와 2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사이에 간극이 좀 있어서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알고보니 1화와 2화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2화에서 수레를 사려는 수이가 등장한다. 무엇엔가 쫓기는 것인지, 상당히 불안하고 초조해보인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독백을 보면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인은 가망없는 전쟁에 나가 전사했고, 사랑하는 미크르와 살던 집은 얼굴도 모르는 낯선 친척에게 빼앗기고 쫓겨날 처지에 처했으니 어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국이었던 올겐트라를 떠나와 적국인 야림의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보려 했지만 다시 올겐트라로 떠나야할 상황이라면 나라도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초조하겠다.
미크르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야림 사람들은 올겐트라 사람인 수이에게 적대적이었다. 낯선 타향에 자신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에 믿었던 연인의 죽음은 수이를 정신적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기에는 충분해보였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수이는 결국 올겐트라를 떠나왔던 것처럼 야림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낯선 곳에서 겨울나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어쩌면 내년 봄을 맞지 못할지도 모른다.
라는 독백은 수이가 느꼈을 불안과 공포와 좌절, 절망, 슬픔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불안정한 미래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던 수이는 집에서 이상한 형체를 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도 듣는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무렵, 수이는 자신의 고양이 마노를 찾으러 왔다는 홀치사와 만나게 된다. 홀치사와의 만남, 마노의 발견은 수이에게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일상적인 대화 없이, 고립되어 생활하던 수이에게 홀치사와의 만남은 알게 모르게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시시한 대화라 할지라도, 궁지에 몰린 사람한테는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법이다.
나중에 홀치사가 몸담은 니노 가문이 어떤 곳인지, 홀치사가 누구인지 깨달으면서 수이는 또다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아니, 본인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미크르의 죽음 이후로 정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수이는 제 손으로 집의 소유권을 쟁취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치사와 마노를 친구삼아 평생을 보낸다. 더이상의 흔들림은 없다는 듯이. 야림이 올겐트라에 재굴복하면서 커진 야림 사람들의 적개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수이는 그런 것에 신경쓰기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었으니까.
나는 수이가 중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그와 함께 떠날 거라 생각했다. 새로이 찾아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그곳에서 묻힐 거라 상상했으나 순전한 착각이었다. 결말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쪽으로 진행되었고, 내가 상상했던 진부한 이야기와는 달리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그렇다. 굳이 수이가 떠나야 할 이유는 없다.
이걸 위해서.
나는 여기 살았다.
이 독백에서 수이가 찾은 삶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약간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다. 남들이 누리던 평범한 삶.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고향을 떠나 자신에게 적대적인 나라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수이가 어쩌면 가장 바랐던 것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수이는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유언 하나를 남겼고, 수이의 친구인 니노 가문 사람들은 마지막 선물을 고맙게 받았다. 왜 제목이 <얕은 무덤>인지 나는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수이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면서 행복했지 않을까.
이젠 수이가 없는 곳에서, 수이의 친구들이 대대손손 그녀를 기억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