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작가님의 <여자와 기생충>이라는 작품은 짧은 동화입니다. 누군가 고운 빛깔의 색채를 만족하지 못하고 검은 색 염료를 타 놓아 점점 더 색감이 탁하게 흐르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작가님은 안데르센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이 이야기를 썼다고 했지만 저는 초반 도입부에서는 마치 어렸을 때 보았던 ‘은비와 까비’ 혹은 ‘ 옛날 옛적에’라는 프로에서 배추도사 무도사 라는 만화동화가 떠올려 졌습니다. (글쓴이로 하여금 연식이 나오네요.)
어렸을 때 부터 소년과 소녀로 자란 이가 함께 자라서 모든 순간까지를 같이 하여 두 사람이 혼인을 했습니다. 모든 동화에서는 남녀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면 끝이 나지만, <여자와 기생충>은 그들이 함께한 시작이 초반부의 이야기 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모두가 알 정도로 흐뭇한 미소를 자아냈던 그들은 성인이 되어 함께 하지만 좋은 일도 잠시 그들의 일상에 비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1막이 그들의 행복이라면, 2막은 남자가 집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이겠지요. 좋은 마음으로 노인이 들지 못하는 짐을 이웃마을까지 들어주고 남자는 고마운 마음이라며 주는 금화를 받아들게 됩니다. 선의로 한 일로 금화를 받고는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며 기뻐할 선물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눈에 들게된 ‘작은 들꽃’이 발단이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고, 여자에게 줄 들꽃이 왜? 문제가 되지 싶나 하는 순간에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등장과 한 영화가 많은 이로 하여금 엄지척을 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영화의 제목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자막에 많이 나왔던 세 글자의 단어가 이 동화에서도 등장하게 됩니다. 작은 들꽃과 들꽃을 소중히 여기는 기생충의 등장은 기존의 남녀의 위치를 확연히 바꾸어 버립니다. 마치 비바람이 몰고 오는 것처럼 위치를 바꾸어 버리고 이야기 조차도 따스한 햇살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순간의 위기가 도래했어요.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 이전의 순간을 고대하고자 상처를 입으면서도 노력하고 있고, 작은 들꽃과 함께 하고 픈 기생충은 살고자 누군가에게 다가갑니다. 생각지 못한 밀당의 순간들이 이 짧은 동화의 하이라이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울리지 않는 순간의 조합이 이야기의 퍼즐을 다시 흐트려 놓는 역할을 하거든요. 이야기는 다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간으로 탈바꿈됩니다. 짧은 동화지만 그들에게 비구름을 안겨주는 기생충과 들꽃을 만난 한 남녀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안데르센 동화만큼 짜릿한 동화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단편의 매력과 초반에 이야기의 층을 쌓아가면서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패턴이 변주되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던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