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일부를 아주 조금만 변형해도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SF 소설은 흥미로운 사고 실험인 동시에 유의미한 전복이다. 연여름 작가의 소설 <밤을 달려 온>도 그렇다.
이 소설은 십이 년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세계를 가정한다. 주인공 ‘온’이 살고 있는 라클 연방은 십일 년째 낮이고, 별의 반대편에 있는 데인 연방은 십일 년째 밤인 상태다.
온은 라클 연방의 서쪽을 지키는 경비대장의 말단 시녀다. 어머니를 여읜 후 저택의 시녀가 된 온은 몸이 굼뜨고 손이 느리다는 이유로 혼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온은 경비대장의 대리인 루폴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명받는다. 별의 반대편에 있는 데인 연방에서 손님 ‘나기’가 왔으니 그의 식사를 나르거나 거동을 돕거나 말벗이 되어주되 그가 무엇을 하는지,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등을 고하라는 것이다.
사실 나기는 평범한 손님이 아니라 라클 연방의 병사들이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다 납치해온 인질이다. 십일 년째 낮이었던 라클 연방에선 어둠을 밝히려 빛을 낼 일도, 추위를 달래려 불을 피울 일도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 긴긴 밤이 시작되면 지금 보유하고 있는 광물의 양으로는 필요한 빛과 열을 충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라클 연방에선 불을 피우거나 빛을 낼 때 쓰는 광물인 호론이 급히 필요해졌고, 단기간에 이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나기가 잡힌 것이다. 이런 정보를 알 리 없는 말단 시녀인 데다가 열 살이라 밤을 살아본 적 없는 온은 그저 밤이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이 세계가 십이 년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세계가 아니라 하루를 주기로 낮과 밤이 바뀌는 세계였다면, 온이 밤을 궁금해 했을까. 저택 사람들로부터 밤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듣기는 했지만, 밤을 직접 겪어본 적 없는 온에게는 소문처럼 느껴질 뿐이다. 밤이 되면 얼마나 캄캄하고 추운지는 십일 년째 밤인 나라에서 온 나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터. 그래서 온은 나기에게 잘해준다. 온에게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사람과 닿으면 자동적으로 그의 의식이 전이되는 능력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온에게 나기는 별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밤을 몰라서, 밤을 알아서,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하루를 주기로 낮과 밤이 바뀌는 우리네 세계에선, 밤을 모르거나 밤을 알아서 생기는 관계나 사건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적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관심 분야가 달라서 생기는 관계나 사건은 왕왕 있다. 중요한 건 다름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태도다.
밤을 모르는 온에게 “너는 모른다. 밤이 얼마나 차갑고 긴지. 그때는 울어도 소용없어.” 같은 말로 윽박지르는 사람과 “그대에게 밤은 아직 이릅니다. 조금 더 낮을 살아요.” 같은 말로 용기를 주는 사람.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인가. 후자 같은 사람과 함께라면 어둡고 추운 밤도 환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