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잘못일까요? – 근원(根原) 감상

대상작품: 근원(根原) (작가: 철학숙제,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5월, 조회 25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 학교’ 놈들과 시비가 붙어 얻어맞은 아이의 소식으로 시끌시끌하게 포문을 여는 이 작품은, 어쩌면 단순한 학원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비가 붙은 아이들, 맞고 온 친구를 두고볼 수 없어 만들어진 패싸움, 그리고 이어지는 선도와 잘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훈훈하게 끝나는 결말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한 단어가 이 훈훈함을 방해한다.

– 당연하지. 거지새끼들은 너네소굴에서나 놀아 물 더럽히지 말고.

(중략)

– 아저씨 거지 아파트에 사는 새끼가 우리 놀이터에 쳐들어왔어요!

(중략)

– 거지새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우리가 무찔러 줘야지!

또래의 옆 학교 친구를 부르는 호칭이 아주 가관이다. 제들 집이 더 잘 산다며 유세부리는 꼴에 헛웃음만이 난다. 옆에서 친구가 노려보며 얌마, 말이 심하잖아. 하고 핀잔을 줘도 아랑곳않는다. 그네들이 그렇게 당당한 데는 이유가 있다.

 

–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뭘.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던가. 어쩌면 이렇게 깜찍하게, 아니 끔찍하게도 닮아가는 건지.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에 봤던 신문 기사가 하나 떠오른다.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파벌이 생겼는데, 그게 사는 집의 평수에 따라 갈렸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태어난 지 몇 년이나 됐다고 그런 걸 벌써 따져?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른들을 잘 따라한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를 쉽게 배우는 아이들. 애들은 나쁜 걸 먼저 배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제들 사는 곳보다 값싼 아파트에 사는 이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배운 듯하다.

거지 새끼들. 이 짧은 단어에 얼마나 많은 편견과 무시가 들어있는지. 그리고 그 편견을 심어준 어른들이 얼마나 안하무인이었는지 금세 알수 있었다.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건, 그 편견과 무시를 고스란히 받아낸 아이들의 상처였다.

 

  (전략)

가슴 한구석에선 계속 찡한 통증이 느껴졌다. 순제는 지금 느껴지는 이 아픔이 어제 밟힌 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눈을 감을 때마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자신에게 발길질을 하며 ‘그 학교’ 학생들이 내뱉던 말들이 마음 속에 박혀 가슴을 아프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략)

아이는 아이다. 아무리 또래 집단 내에서 싸움을 잘 해도, 친구가 많아도 가시 돋힌 말에는 상처받을 수밖엔 없다. 그게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면 그 상처는 더욱 크게 작용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겨우 열두 살이다. 친구가 당한 일에 함께 상처받고, 같이 분노한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뭉쳐 ‘그 학교’ 녀석들과 전쟁을 치르러 간다. ‘전쟁’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자신들을 업신여기는 그 학교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거다.

애초에 ‘그 학교’ 아이들의 시비로 벌어진 사건. 그리고 싱거운 결말. 결국 아이들은 파출소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아이의 눈으로 본 그 상황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시비를 건 쪽은 저 쪽인데. 싸우기도 같이 싸웠는데 왜 한 쪽만 불량배로 몰아붙이는지, 왜 한 쪽의 학부모만 상대 쪽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야 하는 건지 모를 상황 속에서,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 학교’의 학생들이 마냥 나쁜 아이들이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는 여기에도 역시 ‘아이는 아이다.’라는 말로 답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이가 어른의 말을 배웠고, 그대로 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안하무인의 태도만을 배울 수 밖에 없는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다른 이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데 경제적 사정이라는 벽을 쳐놓고 시작하게 된 아이들이 가여웠다. 단지 열두 살의 초등학생일진대,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선을 그어놓고 시작해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어쩌면 평생 그 선을 넘어가지 못하고 좁은 시야로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거기에 어른이 만들어 낸 사회가 한 몫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줄 어른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어린왕자의 한 부분을 남기며 이 리뷰를 마친다.

  만일 여러분이 어른들에게

“매우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이 피어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이라고 말한다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지 머릿 속에 잘 떠올리지 못한다. 그럴때는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나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라고. 그러면 어른들은 “정말 멋지다!” 하고 감탄할것이다.

 

 – 어린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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