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코앞에 두고 바빠진 회사, 연휴는 없어야 마땅하다고 투덜대는 팀장과 그를 못 미덥게 보는 부하직원들. CS팀에 모든 고객 응대를 위임하고 그들이 받는 상처에 무관심한, 팀과 파트와 부서로 구분되어 자기 앞만 생각하는 사각형의 사무실은 현대인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쉬는 것에 마음을 놓기보다 쉬고 나서의 업무 복귀를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혹시’는 오히려 익숙하다.
혹시, 이번 연휴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혹시, 이번에야말로 퇴사할 타이밍인가, 혹시, 저 사람이 하루 더 쓰는 연차로 내가 바빠지지는 않을까. 혹시, 저 사람이 제출한 연차 사유가 거짓이지는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가정과 염려, 타인을 훑는 눈치와 의심으로 사무실은 언제나 포화 상태다.
오메르타 작가의 짧은 이야기는 ‘혹시’로 점철되어 있다.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무례하게 예측한다. 연휴를 앞에 두고 오고 가는 대화가 피부에 가깝다. 부친상을 당한 동료를 위로하기는커녕, 그의 아버지가 ‘타이밍’ 나쁘게 숨진 것을 끊임없이 까대는 직원들. 장례식장 고객으로 얼굴을 비치기 위해 들른 그들에게 상주인 젊은 여자의 침착함이 지나치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고요한 그녀. 그 잠잠함에 사람들은 부친상을 마치 그녀가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수군거린다.
하지만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혹시’에서 그치는 모든 질문의 답은 없다. 독자는 그저 추측한다. 미란이 정말 연휴를 쉬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을까. 정말 오로지 휴식을 위해서? 하지만 CS팀의 업무량과 미란이 맨 총대의 크기를 보았을 때, 그녀의 주변에서 누군가 하나 죽거나, 그녀 자신이 죽는 것 중 무엇도 어색하지가 않다. 그래, 문제는 그 ‘총대’다.
그 안에는 총알이 있으니.
최근 개봉한 《라스트 마일》이라는 일본 영화는 블랙프라이데이를 앞에 두고 벌어지는 연쇄 폭발 사고를 다룬다. 하지만 그 폭발 사고의 심연에는 인간성이 사라진, 커다란 기계의 내부 같은 사회상이 심겨 있다. 첨단의 상업화를 상징하는 ‘블랙프라이데이’. 물건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의 가려진 눈 밖에는 밥 먹을 시간도, 잠을 잘 시간도 없는 택배기사와 공장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연휴에 죽을 결심을 한다.
아니면 누군가를 죽일 결심을 하거나.
‘혹시’는 그런 이야기다. 가정의 꼬리물기 마지막에는 죽음이 있다. 진짜로 누군가 죽기 전에 연쇄적인 ‘혹시’를 멈출 수는 없을까. 의심하고 선을 긋기보다는 공감하고 위로할 수는 없을까. 오메르타 작가의 바람은 그럴 테다. 연휴를 편히 맞을 수 있는 사람의 주변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긴장이 없으면, 폭발도 없다. 총대를 지우고 궁지에 사람을 몰면, 뻔한 결과를 맞는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죽거나, 궁지로 몬 사람이 죽거나. 아니면 오발탄에 제삼자가 피해를 입거나.
이 총알 한 발이 짧은 이야기에서 좀 더 조심스럽게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부친의 죽음을, 미리 예고하고 실행했나’라는 직접적인 문장보다는 이미 구석에서 쪼그려 떠느라 표정마저 사라진 미란이 독자에게 보였으면 좋겠다. 더 많은 ‘혹시’가 미란을 겹겹이 싸 숨통을 틀어막고, 그 막힌 심장을 해방할 단 한 방의 총알, 그것이 탕, 하고 발사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드디어 세상으로 날아오른 총알의 방향을 정하지 않는 것이다. 미란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렇게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혹시’로 남는다.
이 소설에 어떤 ‘혹시’가 더 나올 수 있을까. 모든 문장이 ‘혹시’로 시작되는 건 어떨까. 연휴 직전의 가장 바쁜 시기, ‘혹시’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한 사무실에, 선명한 ‘혹시’가 떨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그 ‘혹시’는 잉크가 물에 풀리듯 서서히 사무실에 퍼져간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미란을 떠올린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그녀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면, 그 총알이 언젠가는 발사될 거라고 모두가 예측할 정도로 미란이 높은 고도에 홀로 매달려 있었다면.
연휴에 부친상을 노린 건 미란일까, 아니면 미란을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일까. 그도 아니면 제도 자체일까. 미란은 도망간 걸까, 아니면 대피한 걸까. 하미란이 무서운 여자인 걸까. 세상이 사람을 무섭게 만든 걸까.
그러니까 상상을 해보는 거다.
‘혹시’나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