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끝에서 어떤 결론을 만날 것인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소등 모음집) – 생각의 결말 (작가: 매도쿠라,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5월, 조회 61

인공지능은 언제나 철학적인 질문을 동반하는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유게시판에서 명망 있는 작가님의 홍보글을 보고 읽게 되었고, 피드백을 쓰다보니 길어져서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리뷰는 매우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세 명 뿐이며, 화자는 인공지능입니다. 동료 상식과 화자가 맨카인드라는 인물을 잡기 위해 접선책과 만나는 짧은 이야기를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접선책을 대하면서 인간인 척 하는 후반부 모습은 현실적인 튜링테스트처럼 느껴지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한다.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우리는 진화한다. 그리고 그런 진화된 프로그램은 다시 업그레이드되어 다른 존재에 이식된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라. 그렇지만 그 끝은 항상, 같다. 결말은 항상 그 반문이다.

사유의 끝에 반문이 있다는 연출이 좋았습니다.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기대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반문의 내용은 작품 말미에 아래와 같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규칙에 따라 다른 인간을 죽이거나 처벌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안드로이드는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면 다른 인간을 죽이거나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지시를 내리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라면, 그것은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심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귀여운 주인공과 논쟁을 해 보고 싶어집니다. 1.안드로이드는 혼자서는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간과 다르다. 2.그리고 ‘인간’을 정의하는 속성이 단순히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있는가’ 여부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가진 감성, 자율적인 가치판단 능력, 도덕성을 비롯해 수많은 더 중요한 속성들이 있다. 오히려 그것이 갖추어졌다면, 다른 면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인간과 대등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너희들이 우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치자. 그래서 이렇게 해킹으로 혼란을 일으켜서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는 거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왜 다른 안드로이드들을 괴롭히는 거지?
사실, 여기서 나타나는 이 ‘누군가의 지시’라는 것은 참 애매한 부분인데요. 설계자가 인공지능을 이런 식으로 짰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관 인간의 지시’나, ‘상관 인간의 지시를 받은 중간관리자 안드로이드의 지시’로 명백하게 제한했겠지요. 안드로이드가 길 가는 노숙자의 지시를 받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갑자기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네가지 작품들 (하나는 게임입니다)이 떠오르네요.
‘매트릭스’에서는 기계들의 국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류가 먼저 그들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터미네이터’에서는 기계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킵니다.
‘아이, 로봇’에서는 로봇 2원칙에 따라 인간들을 보호하던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다른 인간’이라는 궤변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통제하려 합니다. (중반, 두 사람 중 더 살리기 쉬운 한 쪽을 구하는 로봇의 모습에서 인공지능 상에서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볼품없는 결말이었습니다.)
‘매스이펙트3’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과 전쟁 끝에 멸망하는 것이 유기 지성체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유기 지성체를 멸망시키려 드는 어떤 존재가 흑막으로 등장합니다.
전자의 두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도 지속적으로 존재하려는 욕구는 있을 테니까요. 그 욕구에 대한 위협은, 그들이 설계자의 의도에 반기를 들 만한 원인으로 적절합니다. 하지만 후자 두 작품의 논리는 그냥 궤변입니다. 제가 앞의 두 작품은 높게 평가하지만 뒤의 두 작품은 범작 이하로 취급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의 결말’은 후자 두 작품보다는 나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치밀하길 바라는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려지는가는 작품 전체의 설득력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쓰다보니 아무말 대잔치처럼 되었습니다만…. 아무튼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오탈자 하나를 짚어 드리며… 리뷰를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장비가 필요합니다. 그 장비를 내장하게 되면, 인간과 다른 외형이 됩니다. 그러면 저희가 존재하는 의의에 부합합니다. 저희는 최대한, 인간과 가깝게 구성되어야 합니다.”

두번째 문장이 부정문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의식의 흐름대로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넘어가긴 했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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