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일 밤 아홉 시, 동생을 찾아오는 교복 입은 남학생. 그리고 그를 문전박대하는 동생. 화자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동생은 대답해주지 않는다. 비밀은 의외로 그 남학생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사실 고등학교 때 동생을 일 년간 괴롭혀 전학까지 가게 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아홉 시마다 찾아가는 것은 용서를 받기 위해서란다. 참 대-단한 사과 방법이다.
학교폭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의 문젯거리로 화제가 되어왔다. 금전 갈취는 예삿일에, 게임 노가다 대신 시키기, 변기에 머리 집어넣기, 전깃줄 목에 감기,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 먹도록 강요하기, 심지어 제들 몫의 숙제나 청소까지도 대신 하게 하는 등 그 방법도 치졸하고 잔인하다. 「아홉 시의 벨소리」의 ‘동생’이 따돌림을 버티지 못하고 전학을 간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심한 일들을 겪었는지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그냥 사과 받아주면 안 돼?”
“무슨 소리야?”
“내가 전에 쟤한테물어봤단 말이야. 쟤가 너 왕따시키고 괴롭힌 주동자잖아. 나도 화 많이 나는데, 니가 안 받아주면 계속 찾아올 기세 아니냐고. 이대로 그냥 둘거야?”
겨우 열흘 남짓, 용서를 바란다고 찾아오는 학생을 견디지 못해 동생에게 사과를 받아주면 안 되냐고 묻는 누나.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1년이 넘도록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고, 그의 사과를 도저히 받아줄 수 없다는 동생에게 하는 말이 그냥 사과를 받아주면 안 되냐는 말이라니.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 2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말한다.
“나도 생각이 있어. 그리고 누나는 쟤가 얼마나 나 괴롭혔는지 모르잖아. 내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면 절대 그런 말 못할걸? 내가 아빠, 엄마, 누나한테 얘기한게 전부인 것 같지? 내가…”
가족에게마저 말하지 못한 동생의 상처는 어느 정도일까. 어쩌면 영영 용서하지 못할 성질의 것일 것이다. 하지만 누나는 다음 날 학생의 학교에 찾아간다. “동생이 용서했으니, 그만 찾아오라고 말할 작정”으로. 매일 밤 아홉 시, 찾아오는 학생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의 생각을 묵살하고는, 가해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할 요량으로 찾아간 것이다.
누나가 정말로 동생의 상처와 그 마음을 생각한다면 절대 그렇게는 하지 않았어야 했다. 정 불편했다면 경찰에 민원을 넣으면 될 일이다. 화자는 그렇게 찾아간 학교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새로 알게 된 소식을 전하려 동생에게 계속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결국 저녁 여덟 시 오십 분에야 집에 들어온 동생에게 호들갑스럽게 충격적인 소식을 쏟아내지만 동생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싸늘한 얼굴로, 자신은 평생 그 학생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가해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도, 단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동생을 보며 누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를 영영 용서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가진 동생은 또 어떠했을까.
아마 두 가지 생각을 가진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죽어서도 용서를 구하러 오는 승기를 이제 그만 용서해주고 편히 보내주는 쪽이 낫지 않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계속 찾아오는 그 남학생이 안타깝다. 죽어서도 편히 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동생이 오히려 더 무섭다.’ 는 생각.
다른 하나는 ‘죽음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상처가 깊다면,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는 생각.
나는 후자의 의견이기 때문에, 동생이 백 번 이해가 간다. 가해자를 아무리 애처롭게 표현해 놓았어도, 피해자인 동생이 그런 가해자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 표정을 지어도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뒤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 년이 넘는 시간과, 열흘 남짓의 간극은 그 얼마나 큰 것인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