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를 적당히 끝내고 한숨 돌릴 겸, 좋아하는 차 한잔과 달콤한 티푸드와 함께하는 티타임은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티타임에서 나온 차가 평범한 차가 아니라면? 독인지 수면제인지 뭔지 모를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들어간 차라면? 그래도 선뜻 티타임에서 차를 마시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서기수는 기간제 교사로 들어간 학교에서 기묘한 티타임에 초대받는다. 물건을 갖다 놓으러 도서관을 가는 길,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아연이 초대하는 티타임에 강제로 참석하게 된다. 눈을 찌를 듯한 노을빛과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짙은 꽃향기가 서기수의 감각을 마비시켜 자연스레 꽃차를 마시게 유도하는 장면의 묘사가 매우 인상깊었다. 현재 내가 존재하는 곳이 현실인지 아니면 그 부분만 똑 떨어져 나온 평행세계인지 확신하기 힘든 그 애매모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초반 몰입도를 확 올려주었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면서 겨우 현실로 돌아온 서기수는 이게 단발성으로 끝날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무섭도록 정확하게 들어맞아 남수혁이라는 학생이 이아연의 다음 사냥감이 된다. 남수혁이 목숨을 완전히 잃기 전에 이아연을 저지하기 위해 서기수는 김나정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김나정은 이아연을 퇴치하기 위해 휴일에 학교에 무단침입해 한판 일전을 벌인다. 그리고 최은지라는 배후까지 깔끔하게 퇴마하는데 성공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서기수는 왜 그렇게까지 이아연을 없애려고 하는 것인가?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아서? 아니면 남수혁이라는 학생이 공격받아서? 그렇지만 작중에서 드러난 서기수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그는 의협심이 넘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으로 보인다. 자기 밥그릇을 찾지 못했기에 안정적인 자리에 대한 집착도 꽤 강해보인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거기에 맞서는 것이 자기에게 해롭다면 불합리와 타협하거나 적당히 외면할 줄도 아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소시민일 터인데, 도대체 왜 서기수는 이아연과 맞서려고 하는가?
이아연은 서기수를 노렸지만 실패한 이후론 서기수 대신 다른 타깃을 찾았다. 다른 타깃은 짧은 기간동안 임시 담임으로 들어갔던 반의 학생이었다. 남수혁과는 별다른 유대감도 없으니 남수혁이 공격받은 이후 그저 교감과 다른 선생님들의 말처럼 모른 척, 입만 다물고 있었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남수혁이 자기 동생과 겹쳐 보여서 그랬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임관하겠다는 동생의 말에 장례식장에서 주먹다짐까지 했었다고 언급이 되었으니 그것과 관련이 있나 짐작해보았지만 헛다리였다. 임관하겠다는 동생의 등장은 그 이후로 따로 언급이 되질 않아 끝까지 궁금증만 남겼다. 서기수에게 호의를 보이던 교감을 등장시키는 장치로만 쓰인 걸까? 남수혁과 연결시키든, 서기수가 수망귀를 퇴치하는데 그렇게 애를 쓴 이유랑 연결시키든, 단발성으로 사용하고 끝내기엔 아쉬운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이아연과 최은지를 퇴치하기 위한 서기수의 노력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아 몰입도가 좀 깎였는데, 마지막 결말은 더 아쉬움을 남겼다. 김나정과 통화를 끝낸 이후, 서기수는 자기의 무력감에 좌절하는데, 그 이후로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끝난다. 기승전결에서 ‘겨’까지만 쓰고 ‘ㄹ’을 쓰지 않아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혹시 <#???>로 표시된 회차와 연결되나 싶어 다시 읽어봤지만, 딱히 연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느낌만 남았을 뿐이다. 여운을 남기고 끝내고 싶었던 거라면 마지막 문단에 조금만 더 서술을 추가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김나정을 막았는지 아닌지 난 그게 너무 궁금하다. 지금도 궁금하다. 김나정은 과연 치마를 구하는 데 성공했을까?
개연성을 조금 더 보충하고 소설의 길이를 늘린다면 충분히 매력있고 경쟁력있는 판타지 퇴마물이 될 수 있었을텐데, 분량이 짧아 미련이 남았다. 다음 회차가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버튼을 눌러보고 눌러보고 또 눌러보고…
해소되지 않은 의문 때문에 몰입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날 때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본이 탄탄하니 몰입도가 낮아졌다 해도 낮아져봤자 아니겠어? 굳이굳이 몰입도를 수치로 표현해보자면 80%에서 20%로 떨어진 게 아니라 100%에서 85%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작가님이 이 작품을 재집필하셔서 장편으로 쭉쭉 길게 늘려주셨으면 좋겠다. 서기수의 과거가 궁금하고, 김나정의 과거가 궁금하다. 최은지는 왜 수망귀가 되었는지(김나정의 퇴마 실패로 귀신이 달라붙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설명이 미진해 뭔가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있을 것만 같다), 이아연은 왜 최은지의 꾐에 넘어갔는지(성적비관이라 작중에 언급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납득하기는 좀 어려웠다. 여기도 뭔가 더 있을 거 같아!), 학교를 쫓겨나다시피 그만두게 된 서기수는 어떻게 살아갈지, 김나정은 치마를 훔치는 데 성공했는지, 이후 남수혁은 제대로 회복했는지, 임관한 서기수의 동생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현재 뭘 하며 살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이야기가 한 둘이 아니란 말이야.
작가님이 작정하고 써주셨으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차 한잔 하실래요?
대신 티타임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차 한잔 하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