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작가님 글 중에 이 글이 제일 좋은데, 어째서 이 글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부족(?)한 건지 궁금하다.
나는 XX구에 살고 있다. 대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살았으니 오래 살았다고 하기엔 뭣한데, 내가 대학교 재학한 해에 태어났을 인천의 아이들이 이미 머리가 꽤 굵었을 나이니 짧게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내가 인천에 XX년 살았다 하면 사람들이 이제 고향이라 부를 만하네! 라고 평가해줄 정도니 할 말 다했다. (물론 내 마음 속의 고향은 여전히 신라 천년의 고도, 그곳이다. 태어나긴 다른 데에서 태어났지만, 교복 입은 시절을 보낸 곳은 누구한테라도 고향이리라- 내 고향은, 그곳이 맞다)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아니, 어른이 된 정도가 아니지만)의 고향도 분명 나와 같을 것이다. 교복 입던 동네가 고향이다.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는 경서지역이겠지.
이 글의 첫 번째 특징으로는, 이 인천의 이방인인 나조차도 확연하게 떠올릴 수 있는 지역에 대한 묘사를 들 수 있겠다. 인천의 지역별 구분과 명칭, 계양산의 백호 발가락, 검바위가 있던 지역의 학교, 심지어 가사까지 확실한 서XX 고등학교의 교가…! 웃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전부 다 뿜을 것이다. 나는 정말 크게 웃었다. 너무너무 글이 살아 있어서, 마치 이웃집 형님이 소주 한 병 들고 와서 기울이며 말씀해주시는 그런 이미지다. 이 확실함을 보시라!
여기 학교 교가가 그렇게 시작할 거다. “계양산 바라보며…” 하고. 인천이 저기 동인천 중심으로 하는 원인천이 있고, 부평부터 계양구 서구까지 몰아서 북인천 부평 지역이 있고, 그리고 송도가 있잖니. 원인천은 문학산이 중심이다. 송도는 청량산이 중심이고. 그래서 학교 교가들마다 문학산 힘찬 줄기니 청량산의 정기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게지. 북인천은 대체로 저 계양산이야. 가끔 철마산 자락을 이야기하는 학교도 있고, 서해의 힘찬 파도를 논하는 학교도 있긴 있는데, 많지는 않아요. 하긴 가소롭기로는 인천 교육의 노래라고 예전에 있었는데, 그 노래에서는 무려 “한강수 푸른 유역”을 논하고 있었단다. 웬만하면 시 경계 안에 있는 것만 챙길 것이지. 여튼 그렇게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이, 풍수적으로는 주산이라고 부르지. 그런데 말이다, 저기 학교 뒷산 보이지? 저건 사실은 계양산이 아니야. 그냥 계양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일 뿐이지. 풍수에서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잖니. 그렇게 치면 저건 대충 백호 발가락 쯤 되려나.
절대로 조사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토박이가 쓸 수 있는 글이다. 얼마나 생생한 풍경인지!
이 글의 두 번째 특징. 안 그래도 생생한데, 캐릭터가 몹시 독특해서 더 생명력 넘친다. 그냥 평범한 학생인데 친구들은 안 평범한 화자, 계양산 박수무당 집 아들 장수, 배다리파 보스의 숨겨놓은 아들 상구. 그리고 별명만 봐도 웃긴 대가리! 다시 볼까? 화자는 평범하지 않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자기는 세상에 다시 없을 평범한 정상인인데, 친구놈들은 (나를 포함하여) 다 하나 같이 정상이 아니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옆에서 씨익 웃으며 한 마디 해줬다.
“그 이상한 놈들이 다 너를 구심점으로 모여 서로 만났으니, 넌 절대 정상일 리 없다. 정상이라 할 수 없지. 유유상종 모르냐!”
평범할 리 없는 거다. 이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다른 캐릭들도 캐릭이지만, 상구의 독특함이 쓰러질 지경이라 너무 좋다. 상구에 대한 묘사를 보자.
저기 스탠드 밑에 도랑 보이지? 그 도랑이 저기 학교 후문 옆하고 이어지는데, 저기서 피가 냇물이 되어 흐르기도 하고. (중략) 소문에는 거기 보스의 숨겨놓은 아들이라든가 뭐라든가. 여튼 싸움을 겁나게 잘 해서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데 행동대장 비슷하게 그런 게 있었어. 나이는 우리보다 두 살인가 많았지만, 여튼 스무 살도 안 되었잖니? 근데 그 친구가 그 조직에서 처음으로 고등학교에 온 거다. (중략 – 이 꽃화분이 히트니 이 중략 부분은 꼭 읽어보실 것!)
그런데 문제는 전수학교만도 못한 학교인 줄 알고 보냈는데, 의외로 선생들은 공부를 잘 가르쳤단 말이야. 이 새끼가 뒤늦게 공부에 눈을 떴어요. 공부 머리는 아닌데 의외로 이게 재미있어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린 게 탈이라면 탈이었지. (중략)
그래서 자긴 조직 그만둔다도 그런거야. 보스가 애들을 학교에 보냈지. 천 대를 맞고 버티면 나가게 해 준다고 그랬는데, 저기 운동장 한 복판에서 천대를 다 맞았어요.
근데 그럼 뭐 하나.
그 바람에 정학 먹었는걸,
(…작가님, 저거 자긴 조직 그만둔다고 아닐까요? 오타로 보입니다)
공부에 눈 뜬 이 어린 조직원이 없으면, 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장수가 알아내고, 화자가 앓았겠지.
이 글의 세 번째 특징. 기발한데 실제로 일어났을 것 같은 골 때리는 스토리!
7월 셋째 주 토요일(날짜까지 기막히다. 85년 7월 20일이었을 거다. 1회 졸업생이고, 아시안 게임 이후 교복을 입었다는 묘사가 나오며, 당시 1학년이었으니 틀림 없을 터) 화자와 장수, 상구가 뭉쳐 장수네 집에 놀러가게 된 후 하룻밤을 묵는다. 박수무당인 장수네 아버지는 걸쭉한 입담을 발휘하여 사내아이들을 홀려 놓는데, 문득 이분이 명당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게 된다. 이후 그 명당 얘기는 오래오래 화자와 상구의 뇌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가, 결국 계획과 함께 생명을 얻게 되고, 옆에서 들어버린 대가리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다음 번 모일 때 장수가 들고 나온 아버지의 책을 토대로, 그들은 명당을 찾게 된다. 이 명당 찾기에서 또 상구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
“그래, 그래. 그럼 이 산 이쪽 경사로 어딘가에 그, 명당이라는 게 있는 건데.”
장수는 일어나서 사병을 돌아보며 가슴을 쭉 폈어. 하는 행동만은 무슨 왕릉을 점지하러 온 대풍수 쯤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딱 한번만 가르쳐 주는 거라고 하면서 맨날 고장난 녹음기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지. 명당자리라는 게, 그 여자하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여자?”
우리 셋은 눈이 휘둥그레졌어.
그러다가 상구가 문득 책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하고 대가리는 영문을 몰랐고, 상구는 낄낄거리며 여기저기, 산등성이 따라 어디 계곡 진 데가 없는지 높은 곳에서 둘러 보기 시작했어.
(…상구 너 혹시 설마…?!)
그리고 명당을 찾는 그들의 모험.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다.
“명당이라는 건 찾으면 거기에 뭘 묻어야 하는 거 아냐?”
“묻어?”
“그 발복이라는 게 명당을 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다 조상님을 묻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여기에서 상구, 역시 상구다. 상구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명당을 찾아서 우리만 덕을 볼 수는 없지. 의리없게.”
상구가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
“이왕이면, 우리 학교 전체가 다 그 덕을 봐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
“교장을 파묻어 버리면 어떨까?”
글에 묘사된 대로, [배다리파 행동대장 겸 두목의 숨겨놓은 자제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이건 농담같지 않]다. 난 한참을 웃었다. 그거 진짜 실행했으면 적어도 상당수의 학생, 아니 선생들이 행복해 했을 거라는 거 보장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그러고 있다가 경찰에게 걸렸다. 꿀밤 한 대씩 맞고 돌아오는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여튼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은 끝났다. 상구는 화단에 심었던 꽃(ㅋㅋㅋ)과 화초들(ㅋㅋㅋㅋㅋ)을 모두 뽑아 소각장에 처넣고 내다 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어떤 미친 자가 무언가를 훔쳐갔다는 해프닝(ㅋㅋㅋㅋㅋ)도 일어나고 (범인은 우리가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자고) 그렇게 – 모두 그렇게 발복으로 대학교에 갔다라는 훈훈한 얘기 되시겠다.
맨 아래 뒷담의 안부 부분이 백미니까, 꼭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 것!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면, 광대가 승천해 있고 입꼬리도 빙긋이 올라가 있다. 기분 좋은 글이다. 사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글만큼 좋은 게 없는 거다.
그런데 왜 단문 응원이 세 개 뿐이냔 말이다… 미스테리도 이런 미스테리가 없지. 이렇게나 좋은데! 왜지? 왜지??
화자는 몹시 잘 지내는 것 같으니 (이 글 자체가 아들에게 해 주는 말이니 말이다. 아들과 동창이 되는 아버지라니, 뿌듯할 것 같다) 장수랑 상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지내기는 하는지가 궁금한 것(상구의 후일담이 나오기는 한다)은 이야기를 다 읽은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찾아오는 덤이다. 선물이 좀 잔인한 듯도 하지만 뭐, 언젠가는 작가님이 밝혀 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