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피카레스크, <콜러스 신드롬>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콜러스 신드롬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그림니르, 4월 12일, 조회 78

올해 초였던가? 시간여행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외국 로맨스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사실 가족들이 보는 걸 잠깐 같이 본 데 불과해서 그 영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가 시간여행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인생을 그려냈다는 사실은 충분히 포착할 수 있었다.

 

 

해당 영화에 등장한 시간여행자는 애인과 같이 침대 야구를 할 때, 자기의 요술방망이 휘두르는 기술이 애인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자 두 번 더 시간을 돌려서 애인과 야구를 한다. 이때 시간이 돌아간 걸 기억하지 못하는 일반인 애인은 시간여행자가 야구를 너무 익숙하게 해서 잠깐 당황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 “한 번 더 하자”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걸 보면 시간여행자의 노력에 나름 만족한 것 같다. 이때 시간여행자는 이미 세 번째 경기를 마친 뒤라 아주 기력이 빠져 있었다는 게 문제지만.

 

 

이 작품 <콜러스 신드롬> 초반에도 그 장면과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며 나는 이 작품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 보았다. 그 영화와 비슷한 시간여행 로맨스로 흘러갈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까? 무의식 중에 나는 평소 내 취향대로 참신한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졌고, 이 작품은 그런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작품의 참신도가 너무 높아서 내 마음 속의 <예술작품 참신도 측정기>가 삐삐 소리를 낼 정도로 말이다.

 

 

그 영화와는 정반대로, 이 작품은 시간여행자와 사랑에 빠진 일반인의 입장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애인이 시간여행자란 사실을 모르고 그와 함께 연애, 결혼, 임신과 육아까지 한다. 그러는 동안 가끔은 남편인 시간여행자가 하는 행동이 마치 이 일을 전에 이미 해 본 것처럼 능숙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주인공의 머릿속엔 남편을 의심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임신 이후로도 대학원에서 버티다가 못된 지도교수에게 쫓겨나듯 자퇴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선 육아에 치이느라 자기의 본업인 연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으니, 남편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수상하다 여길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이 버린 이상한 봉투 조각에서 주인공은 남편이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음을 알아차렸고, 끝내 그 비밀을 알아내고야 만다. 남편인 푸른 수염이 들어가지 말라고 한 방을 결국에 들어가 본 아내처럼 말이다.

 

 

비밀은 남편이 시간여행자라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었다. 남편이 주인공과 결혼한 뒤 시간을 무려 17번이나 돌렸고, 그 이유는 시간 돌리기를 시작하기 전 아내가 낳았던 딸아이를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었단 사실도 역시 비밀이 아니었다. 진짜 비밀은 그 딸아이를 없애 버린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단 사실이었다.

 

 

남편은 도대체 왜 그랬는가? ‘콜러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질병을 가진 딸아이를 감당하기 힘들고, 또 육아 때문에 자기 시간을 뺏긴단 생각까지 들자, 남편은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 버린 것이다.

 

 

만약 남편이 그 사건으로부터 자신은 가정을 이루기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고, 아내와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면 이 작품의 장르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결국 그 딸아이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시간을 돌려 같은 아내와 또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는데, 자신 때문에 사라져 버린 아이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그 아이를 되찾을 때까지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 아내를 임신 출산시키고, 태어난 아기가 자기가 원하는 그 아이가 아니면 다시 시간을 돌려 똑같은 짓을 또 반복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자기 몸에 치명적인 알레르기를 일부러 유발시키는 꼴까지 보면 정말 남편은 삐리리가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시간여행자 남편의 아내 곧 주인공은 철저히 인간성을 박탈당한 채 도구로 쓰였다. 주인공은 비록 시간이 끊임없이 돌려지고 있음을 느끼지 못했지만, 무려 16번이나 아이를 낳았고 그중 15번이나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아이를 잃었다. 심지어 시간이 돌려지면서 주인공은 자기 아이들이 소멸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시간여행자 남편도 주인공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 남편이 주인공에게 사실을 말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시간여행자에게 아내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아이를 낳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 아이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다른 아이를 낳고 또 낳는 도구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에 묘사된 시간여행자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 차라리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가깝다. 가해자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피해자를 갖고 놀며, 피해자는 그런 사실을 알든 모르든 가해자에게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없으니 말이다.

 

 

비밀을 다 알게 된 주인공은 당연히 악랄한 남편에게 복수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편을 살해하면서 또다른 악인이 되고 만다. 물론 이 작품을 다 읽은 독자라면 아무도 주인공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농락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 아내 목에 흉기를 지르는 놈을 달리 상대할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과 독자를 모두 가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법 체계 아래에서는 주인공이 악인이기에, 주인공은 작품의 결말부에서 구치소에 갇힌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법은 왜 주인공을 악인으로 규정했을까? 대한민국 법은 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로만 남아 있기를 강요하고, 대부분의 경우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똑같은 폭력을 쓰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폭력을 당하던 피해자가 가해자를 향해 손이라도 한 번 올리면 똑같은 가해자, 악인으로 낙인찍히는 게 오늘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법이다.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유형무형의 폭력을 사용했든, 저항 한 번 하는 순간 피해자는 단죄의 위협 아래 놓인다. 이러한 현실을 이 작품은 숨김없이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로맨스 및 복수라는 달달한 요소와 함께 폭력 및 현실 반영이라는 씁쓸한 요소까지 다 갖춘, 참신한 피카레스크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런 작품을 창작하고 또 무료로 공개한 해도연 작가에게 진심 어린 물개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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