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우음(偶吟) (작가: 한켠, 작품정보)
리뷰어: 아나르코, 17년 5월, 조회 673

정말 좋은데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허접한 글 솜씨로 뭐 대부분은 그런 경우이기는 하지만…- 괜히 이런 주절거림으로 그 작품에 쓸데없는 생채기를 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또 정리 안 되는 주절거림을 시작하는 것은 이렇게나마 한 사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그렇다. <우음(偶吟)-우연히 읊은 시>는 강력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강. 추’ 라는 간단한 말이면 될 것을 시작부터 또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이런!!

 

<우음(偶吟)-우연히 읊은 시>는 <서왕(鼠王)>과 <혁명가들>에 이어서 「서왕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최빈의 아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스스로를 죽음과 함께 태어났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곁에서 뭔가를 보고 들은 이들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누설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죽어나갔으니까, -그의 곁에서 죽지 않는 목숨은 까마귀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는 죽음과 함께 태어났고 죽음과 항상 함께 한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왕이 되기 위해서이다. 왕이 되기 위해서 비밀이 만들어졌고, 그 비밀을 품은 채, 또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침묵과 고요와 적막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왕위에는 뜻이 없다.

 

“소자는, 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궁 안에서 인형으로 사느니 궁 밖에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으로요.”

 

왕위에 오르면 왕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형제들을 죽어야 한다. 형제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한다. 왕권을, 혹은 또 다른 뭔가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왕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 또한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말이다.

 

그와 함께 자년 자시에 태어난 아이가 또 있었다. 그와 같은 운명을 가진 그 아이를 서 환관이 데려왔고, 그 아이가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삶을 맞바꿔 살게 되었지만 왕의 자식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예언 그대로 망국을 향해 가는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이야기든 읽어나가면서 머릿속으로 저마다의 그림을 그린다. 하얀 도화지위에 배경부터 하나씩 주위 사물들도 하나씩 그리고 주인공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서왕(鼠王)>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하얀 도화지를 어둡게 또 어둡게 색칠해나가는 것이었다. 하얗던 공간을 그 어떤 빛도 들지 않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그런 이미지였다. 한없이 어둡고 축축한 느낌. 특히나 ‘쥐’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와 압도당해버리고 말았다고나 할까.

 

<우음(偶吟)-우연히 읊은 시> 역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달라졌다면 ‘쥐’에서 ‘까마귀’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 역시나 어떤 강렬함에 압도 당해버렸다. 놀라운 점은 그냥 ‘이 강렬함, 좋다!’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으면서 다른 즐거움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궁중 계략과 음모라는 어느 정도는 익숙한 이야기의 줄기부터 그 속에 존재하는 개개인이 빚어낸 그들만의 삶과 운명의 이야기가 주는 흥미로움은 물론이고, 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이미지와 그에 잘 어울리는 문체가 전해주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감정들이 생각보다 더 치밀하게 구성된 것 같아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 속에 담긴 작가만의 고민까지 슬쩍슬쩍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다양한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점도 좋게 느껴져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 물론 「서왕 3부작」의 치밀한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재미도 결코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서왕(鼠王)>을 읽었다면 같은 이야기를 바뀐 시점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재미는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 반대라면 반드시 <서왕(鼠王)>에서 <혁명가들>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서왕 3부작」 찬찬히 다 읽어보시고 그 즐거움을 꼭 느껴보시라는……. 게다가 <우음(偶吟)-우연히 읊은 시> 뿐만이 아니라 「서왕 3부작」모두 ‘강. 추’ 라는 그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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