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나면 더 무서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메일을 공개합니다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오메르타, 21년 2월, 조회 110

자정 무렵 방에 앉아 이토 준지의 호러 만화를 보는 중이에요. 밖에서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더니, 소복을 입은 백발의 노파가 공동묘지 방향이 이쪽이 맞느냐고 물어요. 우리 동네에 웬 공동묘지? 라고 생각하던 당신은 언덕 위의 초등학교가 옛 공동묘지 터에 지어진 것이라는 소문이 기억나요. 고개를 끄덕이고 노파가 떠난 후에야 생각나죠. 당신의 방이 2층이었다는 사실이. 

위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창밖에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바로 그때입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께름직한 수준이죠. 엄성용 작가님의 단편 <메일을 공개합니다>에도 이처럼 알고 나면 더 사악하고 무서운 부분이 있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힌트: 행운의 편지, 영화 <링>

작품의 화자는 엄성용 작가님의 필명이기도 한 후안이라는 이름의 공포소설 작가입니다. 본인의 팬이라는 남자에게서 온 메일을 공개하는 내용이지요. 메일의 발신자는 창에 비친 꾸물거리는 얼룩을 본 이후 벌어진 공포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퇴마사도 아니고 공포소설 작가인 후안에게 왜 이런 메일을 보냈을까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미지의 존재가 메일 발신자에게 ’이제 한 번 남았는데’라는 경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검은 얼룩을 세번째로 마주치기 전에 그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처럼. 또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사다코가 나오는 우물이 찍힌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던 <링>의 주인공처럼. 

두번째 이유는 후안이 많은 독자를 보유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링>의 후속편 중에 비디오테이프의 영상을 텔레비전 방송으로 송출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제 왜곡된 기억인지 확실치 않네요. 영화 <원더우먼 1984>에서 맥스 로드가 전파를 장악해서 ‘소원을 말해 봐’를 부르는 장면이나 곽재식 작가님의 <이상한 녹정 이야기>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후안이라는 작가를 통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검은 얼룩의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메일을 공개합니다>라는 작품을 읽은 모든 사람이 이제 검은 얼룩의 위협을 받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죠. 이 참혹한 대량살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엄성용 작가님이고요. 그리고선 태연하게 작가 코멘트에 ‘저 멀쩡합니다’라고 남겨 놓았네요. 그러시겠죠. 검은 얼룩의 시선을 독자들에게로 돌리는데 성공했으니까요. 

자, 이제 당신도 제가 이 리뷰를 작성한 이유를 깨달으셨나요? 제 휴대폰 액정에 검은 얼룩이 보였기 때문인데, 당신이 이 리뷰를 읽어 준 덕분에 저는 안전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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